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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만년필 송찬호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 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의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 - 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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