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세대, 따뜻하게 살고 격하게 놀았다

   
 

‘복고’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반복적으로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지향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지난 2000년부터 약 10년간 ‘복고’가 지향하는 것이 7080세대의 문화였다면, 이제는 그것이 8090세대의 문화로 옮겨가고 있다. 이는 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도 그때 그 시절을 잠깐 들추어 보자.
 

 

 

아이돌의 탄생, 새로운 흐름의 시작
80~90년대는 ‘단군 이래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최초의 세대’들이 대중문화의 소비주체로 떠오르던 시대였다. 80년대 이후 음반 구매의 주요 고객으로 10대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90년대 이후 10대는 오빠부대와 팬클럽 등을 조직하며 팬덤 현상을 이끌어 갔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팬덤 현상은 80년대 조용필의 오빠부대에서 비롯되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팬클럽이 조직화되었다. 이후 H.O.T. 젝스키스 등 아이돌 그룹이 대거 데뷔하면서 팬클럽이 이전보다 적극적이고 조직된 소비문화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김영아,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변화에 관한 연구」)
발라드와 트로트 가수로 가득 차 있던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어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랩을 성공적으로 한국화했으며, 힙합과 국악을 접목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과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춤과 스타일에서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단숨에 10대들의 우상이 되었고, ‘문화대통령’이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H.O.T는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이끌었다. 이수만과 유영진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벤치마킹 하여 H.O.T.라는 댄스그룹을 기획하였다. 서태지의 은퇴 이후 청소년을 리드할 문화적 지도자가 없는 공백기에 H.O.T.는 서태지와는 다른 친근하고 부담 없는 모습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신을 표현하였고 청소년층을 장악하였다.(김영아, 위의 글) 당시 H.O.T라는 아이돌 그룹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의 크기는 대단했다. 그들은 국내 최초로 잠실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했고 티켓은 약 7분만에 매진됐다. 그 시절은 요즘처럼 인터넷 통신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팬들은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은행 앞에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또한 H.O.T 공식 팬클럽 회원 수만 10만명이 넘었고 중국 현지 팬클럽 회원 수는 800만명에 이르렀다. H.O.T가 해체할 당시 자살하겠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소녀팬들도 적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대중음악시장은 엔터테인먼트 개념으로 변화하였다. H.O.T가 SM 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기획사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후, 뒤이어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기획사의 훈련과 기획을 통해 데뷔하였다.
 

다양성과 공익성을 겸비한 예능 프로그램
최근 TV를 틀면 어렵지 않게 예능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무한도전부터 1박2일, 런닝맨, 해피투게더 등 TV는 말 그대로 예능을 쏟아내고 있다. 90년대에도 예능프로그램은 존재했다. 최근 유재석, 강호동 등이 예능프로그램 MC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라면 90년대를 대표하는 MC는 남희석, 박수홍, 이경규, 김국진, 홍기훈, 서경석 등이었다. 유명 MC 한두 명의 독주체제로 인해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같은 얼굴이 보이는 최근의 모습과는 달리 당시에는 많은 MC들이 있어 프로그램마다 다른 MC들의 진행을 보고 즐길 수 있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인생극장’, ‘테마게임’ 등이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인생극장’은 매주 프로그램 속 주인공이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을 보여주며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행어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땅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주웠을 때 주인을 찾아준 경우에는 선행이 뉴스에 보도되고 취업에 성공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반대로 자신이 쓰는 경우에는 주운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돈을 쉽게 버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도둑이 되어 감옥에 간다는 등의 스토리인 것이다.
이처럼 이 시절의 예능은 재미와 공익성을 겸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아예 정지선 지키기 캠페인을 그 내용으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어두운 새벽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정지선을 지킨 운전자에게 ‘양심냉장고’를 주었다. 당시 장애인 부부가 1호 ‘양심냉장고’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방송은 전국을 들썩였다. 이외에도 ‘칭찬합시다’,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등이 있었고 이들 방송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물건은 추억을 간직하고
당시에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물건들이 많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카세트테이프다. 지금처럼 MP3나 스마트폰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당시에는 마이마이(mymy)라는 소형 플레이어에 좋아하는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듣곤 했다.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에는 CD플레이어나 USB포트가 있지만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에는 카세트테이프를 틀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장착돼 있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공중전화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공중전화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만 해도 공중전화를 쓰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당시 공중전화가 많이 쓰였던 이유 중 하나는 휴대폰이 나오기 전의 무선 호출기인 일명 삐삐 때문이기도 했다. 삐삐는 발신자가 번호나 메시지를 남기면 수신자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기였다. 당시 사람들은 삐삐에 전화번호대신 삐삐 약어를 남겨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는데 [1004]는 ‘천사로부터’ [1010235]는 ‘열렬히 사모합니다’, [8255]는 '빨리오오', [1200]은 ‘지금 바빠요’ [0024]는 ‘영원히 사랑해’라는 뜻이었다.
카세트테이프와 삐삐 외에도 수기통장(입출금내용을 손으로 적는 통장), 다마고치, 요요, 따조, 구슬 등이 8090시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김의한 기자
han@kunsan.ac.k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