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날더러, 아무개야 라고,
내 이름을 아무 수식 없이 불러 줄 이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

올해 나이 아흔 넷 되신 우리 아버지.
내 기억에 아마도 한 번도 나를 꾸중한 적 없으셨던 우리 아버지.
날 낳으시고 쉰 여섯 해 동안 한 번도 싫은 기색 없으셨을 우리 아버지.

당신을 닮지 않은 아들의 성마른 성질에도 짜증 한 번 안 내셨던 우리 아버지.
무엇이 그리 귀여운지 아들의 이름을 장난스레 부르며 늘 빙그레 웃으셨던 우리 아버지.
좋아하시던 막걸리도 냄새난다며 투정하던 어린 자식의 말에 아주 오래 전에 끊으셨던 우리 아버지.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가없는 사랑이 가슴을 쳐 옵니다.

몇 년 전부터 헤어질 무렵에는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
올해 설을 쇠러 아버님께 갔다가 “나 영등포에 좀 데려다 다오.” 하시는 말씀은 벼락처럼 내 가슴을 울려왔습니다.
못난 아들도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마르고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갑자기 내 평생에 한 번도 아버지 모시고 여행 한 번 해 본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갔습니다.

그래서 결단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버지와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제주도에서 직접 내가 차를 몰고 2박3일의 꿈같은 여행을 하게 되었지요. 가는 길은 폭우로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구나 하고 탄식도 했지만 한라산 폭우길을 뚫고 가니 다행히 날이 개어, 성산일출봉 구경도 하고, 송악산도 거닐어 보고, 모슬포토요시장길에서 갓구운 빵도 먹고 커피도 마셨습니다. 산방산온천에서는 같이 목욕을 하면서 아버지의 등도 밀어드렸는데 아버지의 오랜만에 보는 벗은 몸은 놀랍도록 마르시고 굽어 있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버지 왜 이렇게 마르고 굽으셨어요?
언제 이렇게 마르고 굽으셨어요?
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여행 내내 싱글벙글이셨지요. 나 어렸을 때부터 내게 쏟아부어주셨던 그 한없는 사랑의 미소와는 또 다른 웃음을 머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어린아이같이 해맑은 웃음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버지의 웃음을 보니 한편으로는 기쁘면서 한편으로는 슬픔을 느낍니다. 아버지와 함께 할 시간이 이 세상에서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 이제 이 세상에서는 함께 여행을 못 한다 하더라도 저 세상에서라도 아버지 만나서 부자 간에 함께 웃으며 자유로이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그 해맑은 웃음을 늘 곁에서 보고 싶습니다.

어디 계시더라도 늘 평안하십시오, 우리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