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 구병모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는 화(化)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한다. 붕의 등 넓이도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힘껏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바다를 향해 옮겨간다. 남쪽 바다는 하늘의 연못(天池)이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첫 머리에 나오는 물고기 곤(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귀와 목 사이에 진홍빛 아가미를 가진 남자 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저마다 천형과도 같은 삶을 짊어진 채 각자의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작가 구병모는 주인공인 곤(鯤)의 입을 빌어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만큼 삶의 무게가 비슷한 사람들(51쪽)’에 대한 연민을 드러냈다. 그리고 진화를 거듭한 끝에 사라져버린 흔적기관이 실재하는 곤과 곤에 대한 지독한 애증으로 끊임없이 곤을 괴롭히지만 단 한순간도 그를 선망하지 않은 적이 없는 강하, 그리고 그 둘의 운명을 순식간에 어둡고 축축한 음지로 몰아넣어 버린 이녕의 관계를 통해 운명의 무게에 짓눌리고 시선에 베인 사람들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후배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 달라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놓고도 내내 고민이 많았다. 매일매일 감당하기 힘든 신경통증에 시달리며 강도 높은 재활훈련을 받고 있는 까닭에 꽤 오랫동안 쓰는 일은커녕 읽는 일조차 엄두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난 작년 5월, 내 첫 책인 ‘컴백홈’의 출판기념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 일어난 사고로 하지마비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이달 초에는 ‘장애 1급’이란 글자가 아프게 박힌 복지카드도 발급받았다. 여러모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 전, 여러분 또래의 한 치료사로부터 ‘요즘 한국 소설은 뻔하고 지루하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끝끝내 약속을 번복하는 못난 꼴을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칭 독서광이라는 그 치료사는 자신이 읽은 자기계발서의 제목들을 죽 나열하던 끝에 이렇게 말했다.
“외국 소설은 그래도 좀 읽을 만한데 요즘 한국 소설은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은 게 뻔하고 지루해서 못 읽겠어요.”
다음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책들 중 한권을 그 치료사에게 선물했다. 치료사가 말한 ‘요즘 한국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 구병모의 <아가미>였다. 지금 입원해 있는 재활병원에서 퇴원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나는 그 치료사에게 ‘뻔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요즘 한국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들의 책을 매달 한권씩 선물할 요량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모교의 후배인 여러분들께도 소개할까 한다. 그러는 동안 여러분께 바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소설 읽기 방법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한껏 느슨해진 마음으로 일독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그러한 독서를 통해 여러분은 비로소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심쩍다면 당장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달려가 확인해 보시라. 내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을 테니.
“엄마, 내가 인어를 봤다니까? 그 아저씨는 분명 바다 깊이 궁전에 사는 인어 왕자님일 거야. 그런데 마녀가 준 약을 먹고 두 다리가 생긴 거지.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버릴까?” (187쪽)
절체절명의 순간 생생하게 되살아난 <아가미>의 끝은 이러하다. 그 속에서 무엇을 건져올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