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 미완으로 그친 그 ‘실종의 추억’ 보고서
아이들은 사라졌고, 너무 늦게 죽음으로 돌아온 그들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가설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고 바로 범인은 그 아이들 중 하나의 부모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선정적인 동물다큐의 조작 시비로 대구로 좌천되었다가 재기를 노리던 방송국 피디가, 한 유력한 심리학자가 제기하는 그 도발적인 가설에 집중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것이었다. 영화의 초중반은 바로 이 ‘위험한 의심’의 근거의 구축과 확인 과정을 다루면서, ‘점진적인 스릴러’로서의 미덕을 발한다. 그러면서도 극적 재미를 위하여 사건 자체의 소개와 그 진행과정을 전함에 있어서 사실성을 양보하는 시도가 없다. 사건의 발단과 유가족의 반응 및 대규모 수색 등 그 후의 수사 과정, 그리고 PD와 교수의 추리 구축과정은 다큐멘터리적인 침착함으로 충실히 전개된다. 그에 따라 『아이들...』은 아직도 현재형인 실화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감당해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볼륨과 주름을 갖추고 스스로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팩트와의 조화를 유지하면서 고조시키는 긴장은 딱 거기까지 만이다. 아이들의 실종에 관련하여 있을 수 있는 수많은 가설 중 하나에만 집중하던 영화는, 그 가설 속 유력용의자의 자택 수색의 실행과 피해아동들의 유골 발견의 과정을 거친 후, 갑자기 견고히 붙들고 서야 할 이야기의 기둥을 놓쳐버린 듯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자식 잃은 슬픔과 주변의 의혹이라는 2중고 이외에도 과도한 언론의 관심과 악의적인 혹은 무성의한 제보들 때문에 시달려야 했던 유가족의 절절한 심정을 전달하는 일이, 갑작스럽게 영화의 주 업무로 부각된다. 이어서 현실에서의 수사 기록과는 별도로, 이 천인공노할 행위의 유력한 용의자를 기어이 특정해내어 주인공과 대면케 한 다음 “증거 있어?”라 외치게 한다.
물론 이것이 이미 공소시효가 종료되고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져가는 한 끔찍한 사건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의 환기를 위해, 제작진이 선택한 선의의 시도로서는 타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과로서의 현실이 가지는 무기력감 앞에서 대중이 느낄 법한 그 안타까움과 분노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하고자 하는 영화의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러한 종결의 선택은 그러나 필자에게는 이미 벌려놓은 이야기의 형식적 완결을 위한 관습적인 무모함으로 더 크게 읽힌다. 픽션이 현실에 대해 의미를 가지는 때는, 그 허구가 복잡미묘하며 불완전한 현실의 핵심원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공감하게 할 때이지, 결코 현실에서의 과격한 정서를 손쉬운 ‘시청각적 트릭’으로 구태여 실현시켜내는 경우가 아니다. 그것은 위로나 대안 제시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아픔을 순간적으로 차단하는 마취에 더 가깝다.
『아이들...』은 여러모로 1980년대의 화성연쇄살인 미해결사건을 2000년대에 다루었던 『살인의 추억』에 비견된다. 끔찍한 사건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을 팽팽한 긴장의 범죄스릴러의 그릇에 담아내면서도 그 시대의 공기를 살려내며 역사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발언을 전했던 이 수작에 비해, 사건 발생 20년 후 등장한 이 ‘실종의 추억’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