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기를 벗어나며
작년의 나는 무척이나 바빴다. 대학에 들어와 부푼 마음을 끌어안고, 정말 겁도 없이 학교 안팎을 열심히 쏘다녔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즐거워했던 건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정말 눈앞에 보이는 모임은 다 들었던 것 같다. 동아리에도 들었고, 영어 회화 모임이며 토익 스터디며, 심지어는 하고 있던 게임의 교내 모임까지 참석했다.
얻은 것은 많았다. 자랑까지는 할 수 없어도 자신감은 되어 주는 토익 점수와 바쁘게 살 줄 아는 몸,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진 것 등등……. 하지만 1학년 2학기의 종강이 가까워지면서 내 대학생활에 일어났던 소란은 점차 그 몸집을 줄였고, 나의 생활은 안정되었다. 지나가면서 보는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았고, 바쁘게 움직였던 몸은 무료함에 절로 비틀렸다.
내가 언론사에 들어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편집교정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학과 선배의 제안이었다. 그 전까지는 언론사에 들어올 생각도, 신문 관련 일에 대한 흥미도 없었다. 동기 몇이 언론사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가끔씩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그 이야기가 나의 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선배가 처음 신문 기사의 교정을 맡아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했을 땐 당연히 놀랐다. 화장실 앞이라는, 다소 뜬금없던 장소도 한 몫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살짝 신이 났다. 일단 시기가 적절했다. 나는 익숙해진 학교생활에 살짝 질린 상태로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고, 언론사라는 곳은 내가 한 번도 스스로와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던 신선함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거절해도 된다고, 부담 없이 오래 생각해도 된다고 선배는 계속 강조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나는 고등학생 때 지인의 개인출판을 도우며 교정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야매(?)도 그런 야매가 없었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의 글을 분석적으로 읽으며 틀린 부분이나 개선해야 할 부분을 찾아 고친다는 일은 제법 흥미로웠으므로, 교정에 대한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기자와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했을 때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 내가 고심해서 쓴, 내 자식 같은 글을 갖다가 ‘문제점을 찾겠다’는 작정으로 읽고 이곳저곳을 빨갛게 체크해서 돌려준다니! 한때 취미로 소설 연재를 했던 나는 그 빨간펜을 드는 작업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꿈이 출판편집자였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의 꿈과 닥쳐온 현실은 그 사이에 낭떠러지를 하나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름의 죄책감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일은 이미 시작된 후였고, 처음 받아본 기사들을 나는 입으로 소리까지 내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고칠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나, 오탈자가 아닌 문맥상의 오류를 볼 때는 온갖 고민이 찾아와 키보드 위의 손을 툭툭 건드렸다. ‘이게 오류가 아니고 이 기자의 문체면 어쩌지?’ 혹은 ‘내가 이걸 체크했을 때 이 기자의 기분이 상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떨리는 마음으로 첫 답변 메일을 작성해서 보냈고, 기자의 손을 거쳐 돌아온 1차 교정안은 허무했다. 그는 군말 없이 내가 체크한 부분을 고쳐서 돌려주었다.
아마 이 글이 내가 신문에 올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남들의 수 배 이상으로 글쓰기라는 작업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나사 열댓 개는 빠진 것처럼 살면서 왜 글에만 이리도 모질어지는지.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리뷰도 아니고 정치 기사도 아닌 수습월기에 얼마나 많이 지우개를 비벼댔는지, 이따가 집에 가면 책상 위부터 치워야 한다. 하물며 기사는 어떨는지. 지우개 값이 무서워서 못 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즐겁다. 잘 쓸리지도 않는 지우개 가루를 치우면서도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것 같다.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다 못해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하고 앉아 버린 언론사 자체나, 이 수습월기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바로 손을 대야 할 기사들이나, 집 행거에서 독보적으로 제 존재를 빛내는 샛노란색 언론사 단체 바람막이나……. 모든 게 새로운 느낌으로 피부에 와 닿는 언론사가 있기에, 당분간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