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튀니지에 찾아온 민주주의

   

‘아랍의 봄’ 이 단어는 얼핏 들으면 책제목 같지만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촉발된 유례 없는 반정부 시위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정부 시위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정부민주화 시위는 집권세력의 부패, 빈부 격차, 청년 실업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분노 등이 원이였다. 이 시위는 2011년 1월 재스민혁명으로 번졌고, 이집트는 2월 코사리혁명으로 각각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일부 국가에서 민주화 시위를 통한 혁명이 성공하자, 혁명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민주화 혁명의 중심인 튀니지에서 지난 11월 23일, 드디어 이 나라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튀니지가 1956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뒤 처음으로 시행한 직선제 대통령 선거였다. 이번 대선에서는 세속주의 성향(정교분리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의 니다투니스(튀니지당) 대표 베지 카이드 에셉시 후보(87)가 출마했다.
에셉시는 과거 독재정권에서도 요직을 두루 맡아 행정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독재정권에 몸담은 경력이 오히려 정치적 밑천이 된 경우다. 그동안 불안한 정국으로 인해 ‘그래도 국가 운영을 해본 사람이 낫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꽤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가 소속된 니다투니스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속주의 정당이다. 지난 10월 총선에서 당시까지 집권 여당이었던 엔나흐다를 물리치고 전체 217석 가운데 최다인 85석을 확보해 제1당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에셉시의 라이벌은, 벤 알리 정권 몰락 이후 지금까지 임시 대통령을 맡아온 반독재 민주화운동 출신 몬세프 마르주키 후보(69)로 26.9% 지지를 얻었다. 마르주키는 벤 알리 집권기이던 1994년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투옥되었다. 그는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4개월 만에 풀려나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벤 알리 축출 이후 튀니지로 돌아와 임시 대통령에 올랐다. 이번 대선에서는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다와 손을 잡고 출마했다.
그리고 지난달 21일 대선 결선투표 출구조사에서 에셉시 후보가 55.5%의 특표율로 44.5%의 문세프 마르주키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확실시됨을 밝혔다. 에셉시 후보는 이날 오후 6시 대선 결선 투표를 마친 직후 승리를 선언하고 “대선 승리를 튀니지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며 “마르주키에게 감사하며 이제 우리는 누구를 배척하지 말고 함께 일을 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구 언론들은 튀니지 대선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아랍의 봄’을 겪은 여러 아랍 국가 중 비교적 순탄한 민주화 과정을 밟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튀니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튀니지에 이어 혁명의 불길이 솟았던 이집트의 경우, 합법적으로 집권한 이슬람 정권이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이후 군사정부가 철권통치 중이다. 리비아는 우후죽순 격으로 세력을 키운 군벌들의 난립으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었다. 시리아는 국내외 정치 세력과 종교 집단들이 격돌하는 전쟁터로 전락했다. 학살과 난민이 난무한다. 다양한 집단들이 이럭저럭 정치적 타협을 시도하면서 평화를 유지해온 나라는 튀니지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튀니지는 지금, ‘아랍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한가’를 가늠하는 세계사적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고영두 기자
duden8@kunsan.ac.kr

*참고
「‘아랍의 봄’ 3년 만에 튀니지 첫 민선 대통령」, 『동아닷컴』, 2014.12.23
「'아랍의 봄’ 진원지 튀니지, 첫 미선 대통령 탄생」,  『네이버뉴스』, 2014.12.22
「재스민 향기의 나라에 민주주의 꽃피나」, 『시사인』 , 2014.12.05
「'아랍의 봄'유일 승자인 튀니지 대선, 88세 에셉시 당선」, 『경향신문』, 201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