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白眉)’ / ‘천고마비(天高馬肥)’

지난 호에서 2학기 개강하면서 여러분을 처음 만나며 이번 여름의 열대야와 폭우에 대해 언급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에 태풍 2개가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고 이제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추석을 생각할 시기가 되었네요. 밤에는 벌써 이불 없이 잘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완연히 내려갔어요. 깊어가는 2학기, 익어가는 가을처럼 ‘바른 말 고운 말’도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의 올바른 국어생활을 안내하며 무르 익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쓰는 한자어 중에 많이 쓰이면서도 그 어원을 잘 모르고 쓰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백미(白眉)’ / ‘천고마비(天高馬肥)’

 

“셰익스피어 작품의 백미는 햄릿이야.”

“너 그 소설의 백미가 어느 부분인지 알아?”

“이번 행사의 백미는 셋째 날 상연되는 연극이야.”

 

위의 세 문장을 여러분은 한 번쯤 주위에서 들어보셨겠지요? 그리고 ‘백미’라는 표현에도 익숙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백미’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이고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있으신지요. ‘백미’는 흔히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혹은 물건 또는 사물을 가리킬 때 씁니다. 그리고 한자로 쓸 때에는 ‘흰 백(白)’에 ‘눈썹 미(眉)’를 씁니다. 글자 그대로는 ‘흰 눈썹’이라는 의미입니다. ‘흰 눈썹’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현재의 의미를 가지고 쓰이게 된 것일까요?

이 말은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중국 촉나라에 ‘마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형제 중의 한 명이었는데 이들 형제들은 본 이름 외에 부르는 호칭인 ‘자(字)’에 모두 ‘상(常)’이란 글자를 넣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오형제는 모두 각각의 재주로 이름이 높았는데 그 중에서도 ‘마량’이 그 재주가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고을 사람들은 ‘마씨 집의 다섯 상(馬氏五常)이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白眉)이 가장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마량은 어릴 때부터 눈썹 속에 흰 털이 섞여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백미(白眉)라는 말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같은 형제뿐만 아니라 같은 계통, 같은 또래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되게 되었고, 지금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장 뛰어난 작품, 물건, 사물을 지칭할 때에도 이 말이 쓰이게 된 것입니다.

 

“벌써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었네.”

“가을은 역시 천고마비의 계절이야.”

 

가을에는 이런 표현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표현의 뜻에 대해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표현입니다. 가을에는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높으며, 여름까지 초원에서 배부르게 풀을 먹은 말들은 살찐다는 뜻으로 가을이 썩 좋은 계절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원래의 유래는 가을이 좋은 계절임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옛날 중국의 북쪽에는 흉노라는 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목민족이었고 중국 본토의 광대한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으로 살아갔습니다. 봄에서 여름까지는 초원에서 말들이 배부르게 풀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흉노족의 침입이 없었지만 10월, 즉 가을이 되면 초원의 풀이 마르고 곧바로 매서운 겨울이 찾아오기 때문에 흉노족들은 겨울을 날 식량을 찾아 중국 쪽으로 잦은 침략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을이 되면 북방에 사는 중국인들은 겁을 먹었고 북쪽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경계를 강화해야 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증조부인 ‘두심언’은 북쪽 국경을 지키러 가는 친구에게 이런 상황을 알리려고 ‘흉노 가을에 이르러, 말은 살찌고 활은 강하며 곧 성새로 들이닥친다.’는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여기에서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현재는 가을이 좋은 계절임을 뜻하는 말로 ‘천고마비’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원래는 적을 경계하기 위해 쓰인 말이었다는 것, 재미있는 사실이지요?

오늘은 ‘백미(白眉)’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쓰임과 어원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호에 또 다른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여러분과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보람찬 학교생활 이어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