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회와 증세의 문제
우리 사회는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소득 불균형 문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사회적 부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각시대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빈곤 노인, 장애인과 같이 복지 혜택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의 신음과 절규를 그저 외면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복지 문제가 중요한 논쟁거리로 대두된 것도 우리 사회의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란한 복지구호를 앞세워 선출된 현 정부는 출범한지 100일 지나도록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과 방안을 내놓지 못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가령 장애인 복지 정책만 해도 그러하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장애인등급제 개선 보완, 장애인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장애인연금의 부가급여 현실화, 장애인연금의 기초연금화 및 국민연금과의 통합운영, 기초연금 도입 즉시 중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의 급여 지급, 중증장애인을 고용을 위한 인센티브 부여 정책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다른 후보들의 공약을 경쟁하듯 베껴 놓았을 뿐 구체적 실천 방안이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장애인복지 공약과 관련하여 장애인계에서 중시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의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 중 하나가 ‘개인의 욕구와 사회ㆍ환경적 요인을 반영한 장애판정체계로 단계적 개선’을 국정과제로 제안한 점이다. 그러나 장애판정체계의 개편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현행 장애종류별 1~6급으로 일률적으로 등급을 나누고 서비스 역시 등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이루어지던 시스템을, 개인의 욕구에 기반하여 장애판정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개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은 일대 혁신을 전제한다. 개별 사례관리와 개별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판정 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조사, 사례관리를 위한 상당한 인력 확충, 서비스의 다양화를 위한 각종 노력 등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곧 상당한 시간과 재원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장애인 복지 문제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 산적한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보다 과감한 복지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효율성과 실제성을 고려하되, 장애인과 노인계층, 경제적 소외 계층 등 복지 수요가 발생하는 모든 영역에서 실제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확충이라는 비현실적인 복지 정책 대신 우리 사회 구성원이 감당하고 감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세수를 확대하여 복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복지 사회의 실현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함께 모종의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성패는 이 합의를 이끌어내는가의 여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