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길을 걷는다는 것은

     
 

 5월의 아침, 일찍이 집을 나서 길 위에 선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나갈라치면 잠깐은 움추러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단 길가에 서면 좋으니 오늘도 나는 주저함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선다.  
 꽃과 나무들이 나를 반기고 바람이 살포시 인사하니, 그래서 나는 길가를 걷는 것이 좋다. 서울 도심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자연과 벗 삼을 기회가 적었고 주변의 꽃과 나무들에 관심을 두어본 적이 없었다. 집안에 꽃이 펴도 알아보지 못할 때면 어머니는 그런 나를 영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시곤 했다. 그러던 내가 군산의 하늘 아래 기거하게 되면서.. 이곳의 길가를 걷는 일이 잦아지면서... 꽃과 나무, 또 작은 미물들에게도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운 색과 저마다의 다른 모양새에 신기해하며,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나의 시야에 들어온 꽃과 나무들은 나의 이런 관심으로 인해 얼마나 더 행복해졌겠는가? 그들은 나의 관심을 먹고 자라며 사랑스런 존재로 거듭났으리라. 그래서 김춘수는 그의 시를 통해 이렇게 말했나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또, 길가를 걷는 단순한 행위로 인해 감사의 깨달음이 있기에 나는 길가 걷기를 좋아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의 날씨가 감사하고 특히 힘겨운 발걸음 뒤로 한걸음 쉼을 가질라치면 살며시 불어와주는 상쾌한 바람이 있어 감사하다. 더불어 나의 삶의 이런 저런 감사의 일들도 함께 떠올려본다. 한 연구에 따르면 물에 긍정이나 부정, 어떤 에너지를 주느냐에 따라서 얼음의 결정 형태가 달라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물그릇 주위에 서서 사랑과 감사의 감정을 보냈을 때는 아름다운 얼음 결정이 생겼으나 미움과 부정적 감정을 보냈을 때는 보기흉한 모습의 얼음패턴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몸의 70~80퍼센트가 물로 구성된 인간에게 감사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생각 속에 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인간일진데 이렇게 길가를 걷는 소소한 움직임 속에서 절로 감사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되고 또 감사할 일이겠는가. 
 한편으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기에 나는 길가를 걷는 것이 좋다. 매일 같은 길, 같은 곳을 가지만 가끔은 가보지 않았던 새 길을 걷고픈 마음이 들 때 나는 두 가지 엇갈린 생각에 젖는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기쁨과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길을 돌아 나올 때에는 그런 시도가 있었기에 더욱 기쁘다. 엄홍길 대장은 말한다. “히말라야는 언제 절벽이 무너질지 언제 발밑이 꺼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발만 어긋나면 천길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안전한 길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 발 한 발 내딛어 길을 만들 수밖에요.”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늘 익숙한 삶만을 추구하며 안전을 바랐으나 거기서 더 큰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고 반대로 모험을 건 새로운 도전 속에서 희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애초부터 안전한 길이나 위험한 인생길은 정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우리에게 어떤 변화의 인생길이 요구될 때 이를 선택해 걸어갈 용기만 있다면 충분히 그 길 또한 개척 가능하리라.  누군가의 말처럼 ‘새로운 것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넘지 못할 벽이 되지만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열린 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도 나는 봄날의 길가를 걸었다. 여전히 사랑스런 자연을 벗 삼을 수 있었고, 감사의 하루를 열어갈 수 있었다. 이것이 오늘도 나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길을 꿈꾸고 도전케 하는 삶의 에너지가 되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