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헤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 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이 작품은 젊은 시절 어느 해 겨울에서 이듬해 봄까지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 다정했던 한때를 표현한 부분은 매우 애틋하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그만 봄이 되면서 파국을 맞았나 봅니다. 이별은 심지어 라일락꽃조차 “귀신처럼” 피어난다고 여길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상처가 계속 들쑤셔진다는 데 있습니다. 한때 그렇게 다정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찔렀고”나 “찔렸다”는 식의 강렬한 표현들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찔리더라도 '너'에게 다시 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빈 벌판을 헤매면서 거듭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청파동’은 시인의 개인적 경험과 관련된 지명이겠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그 청파동 같은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정작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그 한 순간의 기억에 대한 간절한 향수입니다. 일찍이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 ??불멸??에서 “존재의 한 순간에 대한 영원한 향수”가 바로 “시의 천분”이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이 시에서 청파동의 기억이야말로 “존재의 한 순간”이고 그래서 “영원한 향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흔히 순간과 영원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순간이면서 영원할 수 있는 게 세상에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간절했던 한 때가 각인되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순간의 영원이자, 또한 영원의 순간이겠지요. 이 작품의 경우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간절한 그 시절이 있기 때문에, 텅 빈 오늘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각자의 청파동을 기억하시는지요. 다시 말해 “존재의 한 순간”과 “영원한 향수”가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