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 정상화와는 멀어 보이는 대학구조개혁
생기발랄한 봄. 하지만 교정 안팎의 분위기는 사뭇 가볍지 않다. 봄 정취를 느낄 여유도 없이 대학구조개혁 문제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2023년까지 대학정원을 16만명 감축할 것이라는 대학구조개혁안을 발표하였다. 맞는 말이다. 급격한 학령인구감소를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그것도 합리적이라 할 수 없는 기준으로 줄을 세워 구조개혁의 칼날을 들이미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당장 정부는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거나 대학평가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정원을 감축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지역 대학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우선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한 자율적인 정원감축을 내세울 경우 재정이 열악한 지역 대학이 정원감축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는 획일적 대학평가를 통해 차별적으로 정원을 감축함으로써 지역 대학이 구조적인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수도권 쏠림현상을 방관하는 것을 넘어 조장하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다. 지역 대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대학들이 경쟁력이 갖출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못하다. 전공은 그저 구색 맞추기일 뿐 모두가 취업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용납되는 현실 속에서 대학교육이 정상화 될 리 없다. 대학구조개혁이 단순히 정원감축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이유이다. 정원감축이 목표라면 굳이 이를 강제할 필요도 없다. 시장원리대로라면 대학 스스로 정원을 감축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특색 없는 취업준비생만 양산해내는 것이 오늘날 대학의 문제이다. 특성화를 통해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고 교육의 내실을 기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강압적인 정원감축과 연계되어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그만 두기 전에 ‘서체’ 과목을 청강하였다고 한다. 그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미국에서 서체를 잘 가르치는 학교 중 하나였다. 그가 그 과목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멋진 글자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없어지지나 않았으면 다행인 과목이다. 어떤 사회이든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곳, 공부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학 본연의 임무이자 역할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그 인재가 꼭 취업준비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미래지향적으로 확장, 발전해 나갈 여지가 있다.
대학구조개혁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더 나은 고등교육체계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학이 따라 갈(follow) 것인가 아니면 끌고 갈(lead) 것인가? 대학의 현실적인 생존여부도 중요하지만 대학의 궁극적인 존재이유에 대해 정책당국과 대학구성원 모두 고민해 볼 때이다. 정부의 잘못된 개입으로 대학의 내부역량이 황폐화되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이 훼손되는 우를 범하질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