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의미는 어디까지 확대해서 쓸 수 있는가?

단어는 그것이 쓰이는 맥락이 다양해지면서 그 의미가 확대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단어는 기본적인 뜻 밖에도 사용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른 뜻을 함께 가지면서 다의어(多義語)가 된다. 예를 들어 부사 ‘너무’는 사전적, 규범적 의미에 따르면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너무 아프다’, ‘너무 슬프다’, ‘너무 위험하다’ 등에서 보이듯 부정적 맥락에서 쓰인다. 그러나 요즘 ‘너무’는 부정적 맥락뿐만 아니라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에서처럼 긍정적 맥락에도 쓰여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규범적 입장에 따르자면 ‘너무 좋다’와 같은 표현은 맞지 않다고 해야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기에 이제는 ‘너무’의 확대된 의미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해야 될 듯하다. 이렇듯 단어의 의미는 사용 맥락이 다양해지면서 그 의미 영역이 확대된다.
요즘 자주 접하는 단어 중에서 사전적 의미가 확대되어 쓰이고 있는 다른 예로 ‘방사능’이 있다.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이 세계적인 문제가 되면서 단어 ‘방사능(放射能)’은 단어 ‘방사선(放射線)’, ‘방사성 물질(放射性 物質)’과 함께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단어 ‘방사선, 방사능, 방사성’이 지닌 사전적 의미에 근거하여 이들 용어를 정확히 구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방사선’은 ‘방사성 원소의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출되는 입자(전자기파)’이고, ‘방사능’은 ‘방사성 원소의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일(현상, 능력)’이다. 한편 ‘방사성’은 명사이기는 하지만 ‘방사성 물질, 방사성 요오드’처럼 대체로 명사 앞에서 후행 명사를 꾸미는 역할을 하면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성질(능력)을 지닌’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흔히 이들 단어의 의미 차이를 손전등에 유추해서 설명한다. 방사선은 손전등에서 나오는 빛에 대응한다. 방사성 물질은 빛을 내는 물질인 손전등 자체에 대응한다. 그리고 방사능은 손전등이 빛을 내는 현상(능력)에 대응한다. 줄여 말하면 ‘방사선’은 ‘입자(전자기파)’의 하나이고 ‘방사능’은 ‘현상(능력)’의 하나이다. 한편 ‘방사성’은 뒤에 오는 명사를 꾸며서 ‘성질을 지닌’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하여 단어 ‘방사선’은 ‘쐬다, 쬐다, 노출되다, 치료를 받다’와 같은 말과 어울린다. 단어 ‘방사성’은 명사와 어울려 ‘방사성 물질, 방사성 요오드, 방사성 세슘, 방사성 폐기물, 방사성 원소, 방사성 동위원소, 방사성 의약품’처럼 쓰인다. 문제는 단어 ‘방사능’의 쓰임에 있다. 언론에서 흔히 ‘방사능 누출, 방사능 오염, 방사능 비, 방사능 채소’와 같은 표현을 쓴다. 이러한 표현은 자주 쓰이면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단어 ‘방사능’을 사전적 의미인 ‘방사선을 방출하는 현상(능력)’으로 해석하게 되면 위와 같은 표현은 어색해진다. 현상이나 능력이 ‘누출’되거나 현상이나 능력에 ‘오염’될 수는 없다.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거나 ‘방사성 물질’에 오염될 수는 있다. ‘방사능 비, 방사능 채소’ 역시 각각 ‘방사선을 방출하는 현상(능력)을 보이는 비와 채소’의 의미라기보다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비와 채소’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위의 표현에서 ‘방사능’은 ‘방사성 물질’이란 뜻으로 쓰였다. 단어 ‘방사능’이 사전적 의미인 ‘방사성 원소가 방사선을 방출하는 현상이나 능력’ 밖에도 ‘방사성 물질’이라는 의미로도 확대되어 쓰이는 것이다. 확대된 의미로의 쓰임이 언중에게 거부감 없이 수용된다면 ‘방사능 누출’, ‘방사능 오염’, ‘방사능 비’, ‘방사능 채소’를 틀린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단어는 쓰이는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그것이 단어의 의미가 지닌 본질적인 속성이다. 단 단어의 의미 변이는 언중들이 수용가능한 범위 안에서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참고로 단어 ‘방사능’은 ‘방사선을 방출하는 세기’를 뜻하기도 하여 Bq(베크렐)’, ‘Ci(큐리)’와 같은 단위로 표시된다. 결국 ‘방사능’은 ‘성질(능력)’ 외에, ‘세기’와 ‘물질’을 가리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