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가을 저녁, 늘 한가위만 같아라

너나 할 것 없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탓에 하루에 겨우 몇 분 동안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이라는 같은 지붕 아래에 의식주를 공유하며 사는 각별한 사이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어찌된 일인지 마음 한 편이 서먹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런 풍경이 본래 익숙한 일인 것처럼 매일 같은 하루가 펼쳐진다. 그렇게 올 것은 오고야 만다. 올 해에도 어김없이 음력 8월 15일, 서늘한 가을 냄새와 함께 그 날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대부분의 명절들이 의례로서의 명분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추석과 설날은 우리 민족의 대명절로 불리며, 아직도 그 명맥이 보존되고 있다고도. 하지만 지난 추석 연휴에 우리는 과연 어떤 민족의 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가. 음력 8월의 허리에 자리 잡은 ‘빨간 날’이 주말과 바로 닿아 있는 덕분에 생긴 약 일주일에 가까운 여유 시간에 우리는 과연 누구와 정을 나눴던가.
평소에는 일상에 매여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친지를 찾아 마음을 나누고 지친 삶에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날이 ‘명절’이라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루가 24시간이라는 불변의 진리가 무색해질 정도로 보통의 휴일과 명절은 몸과 마음가짐에 있어 분명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이렇게 속 깊은 우리의 명절 나기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기도 한다. 주로 주부들이 고된 가사노동으로 인해 겪는 심신의 스트레스라고 알려진 ‘명절 증후군’이다. 그러나 명절을 맞는 이들의 입장이 한두 가지로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 탓에 명절 증후군도 그 양상이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그 선두에 평상시 당신 속에 가장 크게 새겨두며 보고 또 꺼내 보았을 자식을 기다리며 추석 장만에 한 창이신 시골의 부모님들이 있다.
이번 추석 연휴가 주말과 합세해 꽤 길었다는 점은 연로하신 부모님도 충분히 알고 계셨을 것이다. 문제는 연휴가 그 이상으로 길어지더라도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기엔 한없이 짧기만 하다는 데 있다. 가장 크게는 당신을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며 울고 웃는 보물들과의 만남, 그 후의 외로움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한 노인이 그 감정의 혼재를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인이 겪는 명절증후군이라는 가슴 저리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자식 생각 무던히 하시며 지난 봄, 여름 열심히 키워냈던 햇곡식을 비롯해 과일, 젓갈, 참기름을 바리바리 챙겨 떠나는 차에 실어주고 나서야 자식 얼굴 한 번 더 쓰다듬어 보시는 어머니. 아들딸 몰래 손주의 고사리 손에 지폐 몇 장 쥐어 주시고 길 막히기 전에 어서 가라, 나는 괜찮다 하시지만 어째 애꿎은 하늘만 보시는 아버지. 사랑이란 이름이 알면 알수록 너무도 무거워진다.
그러나 제 갈 길만 알고 바삐 움직이는 시계 앞에서 길었던 연휴도, 아쉽기만 한 만남도 그저 지나간 과거가 된다. 하지만 사람은,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은 그렇게 평범한 이름으로 묻어두고 싶지 않다. 그 누군가를 위한 가을 저녁, 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한 기회라고 부르고 싶은 날, 부모님 마음에도 다복한 보름달이 찬란한 진짜 ‘명절’이 그립다.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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