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4기 사람들, 캄보디아 아이들과의 사랑

해외봉사를 처음 알게 된 건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넌 꼭 한 번 가면 좋을 것 같아!’라며 추천을 해주었다. 권유를 하여 정보를 찾아보니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 공고를 보고 서류 제출, 체력 검사, 면접을 준비할 땐 꼭 가고 싶다’는 ‘열정’하나로 준비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해외봉사에 다녀올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첫 교육날, 대략적인 설명과 우리가 준비해야 할 태권도, 사물놀이, K-POP, 교육봉사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는 ‘사물놀이’조로 배정받았다. 지원서에 초등학교 때 단소를 불었다는 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조원들을 만났을 때 사물놀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교육할 사람과 우리가 연주할 가락을 직접 알아봐야 한다고 한다. 처음엔 막막했다. 하지만 지인 중에 사물놀이를 오래 했던 분이 계셔서 직장인이라 부담이 될 테지만 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도와주신다고 하셨다. 그 분의 근무시간에 맞춰 우리는 연습에 돌입했다. 솔이언니, 송희언니, 보람언니, 나 4명이 장구, 다운오빠와 영욱오빠가 북, 회권오빠가 징, 승진오빠가 꽹과리를 맡아 우린 총 8명, 4개의 악기로 구성되었다.

   
 
몸풀이-칠채-육채-구기다-짝쇠로 구성된 ‘웃다리 사물놀이’를 연주하게 되었다. 시험 당일 주를 제외하고 매 주마다 이틀 동안 제 1학생회관에서 모여 악기를 연습했고 가끔은 교육해주시는 분이 다른 분들도 모시고 와 각 악기마다 개인지도까지 받을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연습을 해서인지 불평불만 하는 사람 없이, 다투는 일 없이 잘 이루어진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해외봉사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캄보디아로 도착했을 땐 밤 11시였다. 한국은 겨울이지만 캄보디아는 건기라고 한다. 굉장히 습했다. 벌써부터 땀이 나고 굉장히 낯설었다. 숙소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아침, 우리가 8일 동안 지낼 따스나에 초등학교로 떠났다.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할 대표적인 봉사는 교육, 노력봉사이다. 첫 날엔 솔직히 200명의 아이들이 몰려왔을 땐 특유의 쇠 냄새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3일 동안 캄보디아 특유의 향신료 냄새 때문에 맨밥을 먹지 못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이기 때문에 적응이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적응해야 지낼 수 있는 걸 알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용하는 물로 씻고 아이들과 더 함께 있으려고 노력했다. 물을 사용할 땐 펌프질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큰 추억이 될 것 같다.


교육봉사 땐 통역사 피에롬의 도움을 받으며 수업하고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됐지만 한 명도 싫은 내색 없이 모두 즐거워하며 잘 따라와 주었다. 항상 웃으며 열심히 해주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힘이 나고 너무 고마웠다. 수업이 끝난 후 조원들과 함께 피드백 회의를 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대부분이 긍정적인 의견이었고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게 효율적으로 사용하자고 다짐하였다. 초등학교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해가 지면 샤워할 때나, 화장실 갈 때나 랜턴에 의지하여 생활해야 했다. 캄보디아의 밤하늘은 소문대로 한국의 시골보다 더 쏟아질 듯한 별로 가득 찼다. 눈 깜빡이면 별똥별이 떨어질 정도였다. 한참을 의자에 누워 밤하늘을 본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조회와 단체 춤 연습을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셋째 날 오전엔 노력봉사를 하였다. 화단을 가꾸기 위해 주변에 있는 잡초를 쳐내고 주변정리를 하는 것이다. 이상호 선생님의 지휘 하에 4인 1조로 움직였다.  날씨가 무척 더웠지만 우리의 손길로 더 예뻐질 화단을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봉사가 끝나고 난 뒤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플래시 몹을 하였다. 열심히 풀을 베다 다 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힘들어 처진 분위기를 플래시 몹 하나로 모두가 신나게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 날엔 사물놀이, 태권도, k-pop 공연을 선보이고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따스나에 초등학교에서 8일 동안의 봉사를 마무리하고 시엠립으로 나왔다. 오후에 자유 시간을 가진 뒤 저녁에 플리마켓을 하기 위해 나왔다. 거기서 통영에서 해외봉사를 온 선생님께서 기부금 30달러를 주셨다. 뜻밖의 만남에 큰 선물을 받아 너무 감사했다. 수익금 탁아소로 기부하기로 했다. 다음 날엔 수상마을로 교육봉사를 갔다. 아이들이 예상보다 많아 통제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특별히 4조의 요한, 충현, 유나, 다향과 함께 하여 더 수월했던 것 같다. 그 날 저녁식사를 한 뒤 야시장을 갔다. 신기한 게 많았고 다양한 전통의상, 선물, 길거리 음식을 팔았다.
다음 날엔 동남아대학교를 가 우리가 문화교류를 위해 세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해온 사물놀이, 태권도, K-POP 공연을 보여줬다. 할애된 시간이 적어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동남아대학 학생들에게 캄보디아 전통 춤을 배우고 같이 췄다. 조가 만들어져 부족한 영어로 대화를 나눈 뒤 페이스북 친구도 맺으며 계속적인 연락하기를 기약했다. 오후엔 시내투어를 하였다. 툭툭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원, 박쥐공원,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저녁을 먹고 야시장 탐방을 갔다. 가도 가도 볼 게 많았다. 
다음 날엔 탁아소로 봉사를 갔다. 아이들은 약 15명이 되었던 것 같다. 침대, 실내바닥, 창틀 청소를 하고 일부는 아이들을 돌봤다. 아이들에겐 한국에서 그 흔한 손수건도 없었다. 그래서 침을 흘리면 아이의 옷으로 닦이는 것을 봤다. 그만큼 상황이 열악하던 것이다. 오전에 봉사를 하고 아이들이 낮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오후에 다시 와야 했다. 그 때 챙겨온 손수건을 아이 목에 매줬다. 너무 예뻤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다음 날은 문화탐방 첫 째 날, 캄보디아의 관광 명소인 앙코르톰과 앙코르와트를 갔다. 사진으로만 봤던 곳들을 실제로 가 볼 생각에 굉장히 설렜다. 앙코르톰을 처음 들어갈 땐 남문을 통해 들어갔다. 조각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대표적인 유적지는 바욘사원, 코끼리테라스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엔 앙코르와트로 이동했다. 호수에 비친 앙코르와트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고 그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저녁엔 동남아대학교에서 준비한 공연을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는 의견이 많아 통역사를 통해 공연할 장소를 경찰에게 허가받고 다같이 야시장 부근 공원으로 길거리공연을 하러 갔다. 공연시작을 사물놀이로 알리며 태권도공연, K-POP공연을 하였다. 모두 열정적으로 신나게해서 그런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분위기도 후끈했다. 캄보디아로 관광오신 어르신들은 내일이며 돌아가는데 너무 좋았다고, 타지에 와서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는 게 너무 좋았고 고맙다며 끊임없는 칭찬을 해주셨다. 정말 너무 좋았다. 야시장을 구경할 땐 알아봐주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 캄보디아 민속관에 들려 다양한 문화체험을 했다.
13박 15일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올 때의 마음가짐을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러지 못해 아쉬움도 크지만 돌아와서 생각하면 울컥하며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물질적인 게 아니더라도 내가 얻어가는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2주 동안 지낼 땐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은 너무 빠르게 갔던 것 같고 ‘더 열심히 할 걸’이라는 아쉬움도 컸다. 우릴 믿어주시며 싫은 소리 안하시고 챙겨주신 선생님들, 4기 전체 인원이 한 사람 한 사람 너무 좋은 분이기 때문에 더 많이 정들고 친해질 수 있었고 전체적인 트러블 없이 잘 다녀온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세상 끝날 때 까지 함께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잊을 수 없는 2015년의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