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인생 재무제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세상사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며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천박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돈’이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2012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88만원 세대’, ‘하우스푸어’라는 단어가 일상화된 용어로 자리 잡아 버린 지 오래다.

‘누구를 위한 재무설계(진단)’, ‘얼마동안 얼마 모으기’, ‘부자되는 법’, ‘재테크 잘하는 법’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에 관한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이들을 보통 재무제표라고 한다)를 뽑아보기 마련이고 이들의 미래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동산, 금융자산 등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어느 정도인지,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빚(부채)을 지고, 그리하여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은 어느 정도인지. 또한 벌어들인 소득(수익)과, 지출한 소비(비용)에서 남거나 모자란 금액은 얼마인지까지!

얼핏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돈밖에 없으랴. 거창하게 어느 심리학자의 이론을 읊조리지 않더라도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물론 돈이 중요하지만) 돈이 계속해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세태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한 지혜랄까 그런 담론들은 보기 드물고 그러한 사례 역시 미담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을 딛고 구글러(googler)가 된 이가 있다.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익히 알려진 구글에 그것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는 국내 1호 입사자라고 한다. 나는 어린 시절 그 친구가 부족한 환경 때문에 좌절하고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더랬다. 구글 입사 전 조그만 벤처기업에 다녔고, 지방대 출신에 변변한 영어성적 하나 없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엔지니어로서의 꿈, 열정, 도전정신이라는 행복한 자산을 키워왔음이 분명하다. 면접횟수가 많고 어렵기로 유명한 구글 입사면접에서 그는 이러한 행복 자산을 유감없이 보여줄 기회를 접했으리라. 그리고 지금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며 새로운 행복자산을 만들고 있으리라. 그는 말한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면,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의 이면에 감춰진 코드의 아름다움에 감동할 수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느낌을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나는 회계가 아닌 회개를 한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동해본 적이 있는가?”

화폐로 측정된 부, 그리고 그 만족감이라는 것은 쉽게 무너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회계 잘하여 성공한 자 없는 바는 아니나, 무릇 회계성공이 인생성공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순간 나는 또 다른 내 인생의 재무제표들을 상상해 본다. 학자로서,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지닌 자산과 내게 지워진 빚은 무엇이며, 어떤 노력을 투하하여 어떤 성과를 산출해내고 있는지, 나아가 무엇을 베풀고 희생하여 어떤 행복감과 자존감을 얻고 있는지.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인생 재무제표의 항목 하나하나 하나같이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들임에는 틀림없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한다고 면박이나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인생 재무제표를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빚 진 것보다 많은 것을 베풀고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양동재(회계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