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목탁
얼음 목탁
이정록
산사 뒤 작은 폭포가 겨우내 얼어 있다.
그동안 내려치려고만 했다고
멀리 나가려고만 했다고, 제 몸을 둥글게 말아 안고 있다.
커다란 얼음 목탁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염주알들. 서로가 서로를 세수시켜 주는 저 염주알을 닮아야겠다고, 버들강아지 작은 솜털들이 부풀어오르고 있다.
네 마음도 겨울이냐?
꽝꽝 얼어붙었느냐?
안에서 두드리는 목탁이 있다. 얼음 문을 닫고 물방울에게 경을 읽히는 법당이 있다. 엿들을 것 없다. 얼음 목탁이 공양미 씻는 소리. 염주알이 목탁 함지를 깎는 소리.
언 방에서 살아가며 기도를 모르겠느냐?
나를 세수시켜 주는 쌀 씻는 소리가 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목탁은 원래 물고기 모양이었고 그래서 목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또한 절에서 처마 밑에 매달아놓은 풍경도 물고기 모양이지요. 이처럼 물고기를 본떠 종교의식 용구를 만든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밤이고 낮이고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목어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둥근 방울 모양으로 제작되어 현재 우리가 아는 목탁이 된 것이지요.
이 작품은 겨우내 얼어붙은 폭포로부터 목탁의 이미지를 끌어들이는 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폭포와 목탁을 연결시킨 문학적 상상력을 일상의 논리로 다 해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선 폭포나 목탁은 둘 다 소리를 내며 내려치는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지요. 얼어붙기 전까지 폭포에서는 쉴새없이 물이 떨어져 내리며 요란한 소리가 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동안 내려치려고만 했던, 멀리 나가려고만 했던 폭포가 지금 얼어붙어서, 그야말로 “제 몸을 둥글게 말아 안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폭포를 얼음 목탁에 비유한 상상력은 이렇게 출발합니다. 그렇지만 얼어붙은 폭포를 보고 수도에 정진하라는 뜻이 담긴 목탁을 끌어들인 것은 단지 이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제 몸을 둥글게 말아 안은 폭포를 통해 단순히 물살이 얼어붙은 형상만을 표현하고자 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어떤 갈증이나 열망을 안으로 가라앉혀 다스리게 되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얼어붙은 폭포의 내면에서 물방울이 듣는 소리를, 시인은 “물방울에게 경을 읽히는 법당”이 있다고 인식합니다. 그 소리는 염주알 소리이기도 하고, 목탁 소리이기도 하며, 봄이 오면 피어날 버들강아지 작은 솜털들을 부풀어오르게도 합니다. 또한 더 나아가 그 소리는 공양미 씻는 소리이기도 하고, 염주알이 목탁 함지를 깎는 소리이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시원하게 세수시켜 주는 쌀 씻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어디 산사를 찾게 되면, 과연 그동안 내려치려고만 했던, 혹은 멀리 나가려고만 했던 우리 자신을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겨우내 얼어붙은 폭포를 통해 마음의 고요를 얻을 수도 있나 봅니다. 삶의 갈증이나 열망은 이처럼 겉으로 요란하게 분출할 게 아니라 안으로 가라앉혀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내적 평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네 마음도 겨울이냐?/ 꽝꽝 얼어붙었느냐?” 이런 질문이 자꾸 가슴을 두드린다면, 어디쯤인가 겨우내 얼어붙어 있는 폭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나를 세수시켜 주는 쌀 씻는 소리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