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할 때, 뛰어야 할 때
나에겐 고등학생 때부터 했던 다짐이 있다. ‘이번 방학은 정말 알차게 보내야지.’라며, 종강을 맞이하기 전부터 방학을 알차게 보내고자 매번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바쁘게 한 학기를 지내다 보면 종국에는 놓쳤던 것들이 많았었다는 아쉬움에, 학기 중에 미쳐 못다 한 일들을 방학 때는 이루고자 했다. 대외활동, 자격증, 토익 등 여느 대학생이 그러하듯, 방학 중에 해보고 싶은 일들은 무수했다. 그렇게 나는 학기 동안 곧 맞이할 방학을 고대하며, 끝이 보이지 않았던 과제와 시험의 연속을 힘차게 달린 것 같다.
종강 이후 집에서 맞이한 첫 아침이 그리도 상쾌할 수가 없었다. 이번 학기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창문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새삼스레 다시 봤다. 눈을 떴음에도 침대를 벗어나지 않은 체, 몸을 몇 번이고 뒤척였다. 3학년임에도 여전히 종강 다음 날이 낯설다.
같은 지역에 사는 친구들도 방학을 맞이해 연락이 오곤 했지만, 지난 7월은 오롯이 나에게 쓰고자 약속했기에, 따로 만남을 노력하진 않았다. 이제껏 달려왔던 다섯 학기 중에 지난 학기가 가장 버거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누군가를 만나기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회복’이란, 단지 누군가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바쁘게 한 학기를 지내면서 놓쳤던 것들에 대한 ‘재도전’을 가리킨다. 학기 중 어느 순간부터 멈춘 블로그 포스팅, 미뤄둔 체 감히 염두 내지 못했던 공모전, 여행을 꿈꾸며 공부했던 외국어 회화 등 나는 이번 방학, 비록 느린 속도였지만 다시 한번 도전했다.
오랜만에 맞은 여유를 한껏 만끽하며 천천히 걷고 있음을 느꼈을 무렵, 7월과 다르게 8월부터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약속하며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루는 타지에 사는 친구를 볼 겸 그 지역 축제 약속을 잡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 이야기를 시작하자 축제 시작 시간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뒤늦게 도착한 축제는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축제 내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많은 인파 속에서도 ‘좋지 않은 자리라면 한 자리쯤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축제 장소에 들어섰지만, 삼십 발자국쯤 걸었을 때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내가 하늘을 그저 올려다보며 멈춰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바쁘게 뛰고 있었다. 가끔은 천천히 걷는 법조차 잊어버려 그저 멈춘 상태로 있던 시간 동안 나는 이미 뒤처졌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번 황룡담을 읽는 독자 중에서는 방학의 여유를 즐긴 학우도 있을 것이고 목표한 것들을 향해 열심히 달린 학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학우도 틀리지 않았다. 그저 걸어야 할 때와 뛰어야 할 때를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가끔은 멈춘 상태로 그 무엇도 하기 싫을 때가 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멈춰만 있다면 결국 걸어야 할 때와 뛰어야 할 때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놓쳐버릴 수 있음을 명심하자. 다시 맞은 이번 학기를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질문해본다. “당신은 걷고 있나요? 뛰고 있나요? 혹은 멈춰있지는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