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된 사내

언젠가부터 사내는 가는 외줄에 매달려 거미가 되었다. 눅눅한 습기가 피어오르는 반 지하 방부터 좁게 이어진 쪽방촌까지 출렁이던 거미줄. 더 이상 삶의 탄력을 뿜어낼 수 없는 거미줄은 보는 사람마저 위태롭게 한다. 한 순간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자 뒤편에 걸린 풍경이 휘청인다. 풍경이 제자리를 잃어가자 사내의 삶도 한 번 더 기울어진다.

 

사내의 등을 움켜잡고 있는 새끼거미 같은 아이들이 허공을 향해 자맥질을 한다. 거미줄 속 삶의 밀도가 풀어지는 순간 아이들의 터전은 점성을 잃어갔다. 바람이 불었다. 오늘도 집안에 간신히 묶어놓았던 희망의 줄 한 움큼이 튕겨 나갔다. 촘촘했던 꿈은 점점 성글어진다. 날개의 기억을 하나씩 지운다. 날개가 사라진 거미줄은 단지 꿈을 꾸기 위해서 있다.

 

꿈속에서 사내의 몸이 빨라진다. 가벼운 주머니 속에 속박되어 있던 사내의 삶은 천천히 자유로워진다. 그동안의 기억들에서 뻗어 나오는 손과 다리들은 비로소 삶을 지탱한다. 우유 배달, 신문 배달 여러 곳에서 뻗어 나온 신체의 일부들은 사내의 일상을 빼곡히 채워간다. 거미 다리가 많은 이유를 사내는 꿈속에서 깨닫는다. 매일 햇살을 끌어올리는 사내의 뒤로 힘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