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내 성격 이야
사람에게는 불쾌한 일 또는 욕구 불만의 상태에 부딪혔을 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동적으로 취하는 방어기제가 존재한다. 방어기제에는 도피, 억압, 치환, 승화, 보상, 투사, 퇴행, 합리화 등이 있다. 이는 보통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데 자신의 본능적 욕구나 감정을 감추는 성격을 띤다.
합리화 하는 방법 중 하나인 ‘변명’. 우리가 흔히 하는 변명의 1순위는 무엇일까? 기자는 “내 성격이야”라는 말을 뽑았다. 듣는 이로 하여금 뒷목을 잡게 하고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당황스런 ‘성격 탓’. 이 말의 위력은 실로 위대하다. 때론 타당한 이유가 되고, 사람들에게 수긍의 동정을 얻기 쉽다. 문제는 이 성격 탓이 타당한 변명이 되는가 이다.
성격이란 각 개인이 지닌 특유한 성질이나 품성을 의미한다. 이는 참으로 추상적인 개념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그에 맞게 변형 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성격을 운운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성격이 이유라면 타인은 수용 할 수밖에 없는가. 여기서 생각이 갈릴 수 있겠지만 기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삶을 산다는 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라지만,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과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성격만을 주장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성격임을 주장 당하는 사람에게도 성격이 존재한다. 각 개인의 성격은 타인과 비슷한 면모를 가지면서도 분명히 다르다.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참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많은 부분이 교집합이 될 수 있으나 모두 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 이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격은 변하는 환경에 의해 조금씩 덜어지거나 더해진다. 이는 내가 주장하며 유지하고 싶은 성격도 변화됨을 의미한다. 그 변화가 무척이나 더뎌 느끼지 못할 뿐.
성격 탓의 문제는 나에게도 돌아온다. 타인의 조언이나 지적에 ‘내 성격이 그러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말을 한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문제라고 생각되는 자신의 모습을 고치려 하다 어려움을 느끼면 ‘내 성격이 그러한데’라는 말을 하며 다시 고착화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굴레는 계속되어 스스로의 방어책이 되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더 나아가 타인에게도 인식시킨다. 마치, 타당한 것처럼.
한 수업에서 교수님의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가 인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강의를 청강하거나 자기계발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자기 계발은 자신의 방어기질에서 나와 자신을 직면하고 고쳐나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린 나무의 가지를 바로잡는 것은 쉬우나 성장한 나무의 가지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고 한다. 오랜 시간 다져진 성격을 고쳐나가는 것도 그와 같으리라 격려의 말을 전한다.
염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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