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궁전 - 이스마엘 카다레
얼마 전 개최한 ‘G20 정상회의’ 홍보에 왜 그리 매달렸는지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최근 한 국회의원이 풍자개그로 장안의 화제가 된 개그맨을 고소한 신문보도를 접하고 보니 대통령 이하 정치인들이 왜 그토록 ‘G20 정상회의’ 준비에 열을 올렸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여러모로 의식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이 웃지못할 촌극의 주체가 다름아닌 국회의원인 우리나라로서는 선진국인 ‘G20’이라는 ‘그들’의 카테고리 안에 어지간히 들어가고 싶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접하고 성급하게 난무하는 비웃음 속에서 우리가 차분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권력-시스템’의 본질이다. 그 어떤 것이든 시스템으로 고착 되고나면 자신의 내부를 흔드는 힘들은 모두 오류로 인식하고자 하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종종 금기를 넘나드는 난폭함까지. 이스마엘 카다레가 「꿈의 궁전」을 통해서 우화적이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그 어떤 신문기사들보다도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권력-시스템’의 모습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국가기관인 ‘타비르 사라일’을 보자. 이곳은 “제국의 최고 중추 기관 가운데 하나”로서 ‘꿈의 궁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곳이면서,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철저히 베일에 싸인 기관이다. 어째서 이런 별칭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막 첫 출근을 하게 된 주인공에게 기관을 설명하고 있는 상사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나을듯하다.
“우리 꿈의 궁전은 한때 신께서 내려주신 표식을 읽고 예언을 독점하던 사람들처럼 각 개인이 꾼 개별적인 꿈들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일에 관여한다네. 그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꿈을 빠짐없이 모은 통합 타비르를 분석하는 일도 하지. (…) 잠든 수백만 명 가운데 한 사람의 머릿속에 숨겨진 꿈을 찾아 설명함으로써 제국과 통치자께 다가올 불행한 일을 미리 막을 수 있고 전쟁이나 페스트와 같은 역병을 피할 수 있으며 새로운 이념을 잉태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지. 따라서 꿈의 궁전은 허깨비 같은 기관이 아니라 제국의 중요한 대들보 가운데 하나일세.”(26~27쪽)
우리의 눈에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목표를 가진 이 기관은 그러나 현실의 그 어떤 기관보다도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민들이 꾸는 꿈을 매일매일 빼놓지 않고 조사해서 기관에 올리는 전국적인 규모의 조사관들, 도착한 꿈들의 유용성을 가리는 선별부, 선별부에서 넘어온 중요한 꿈(‘핵심몽’)들을 해석하는 해석부들이 그것이다. 또한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정성을 기한다는 명목 아래 스스로 “개방이 아닌 고립”을 선택한 기관이라고 자랑스럽게 덧붙이는 상사의 말을 듣다보면 카다레의 소설이 우화적 세계를 그리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사실적인지를 금방 알게 된다.
위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꿈’이라는 단어만 ‘의사표현’이나 ‘SNS’, 그도 아니라면 ‘개그’로 살짝 바꾸어 보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1년의 한국과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이 아닌지. 게다가 이러한 카다레의 작품세계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장기간 지속되던 조국 알바니아의 공산독재체제라는 사실은 작가의 용기와 그것을 형상화시키는 뛰어난 문학적 능력에 대해서 놀라움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작가가 마주했던 과거의 현실과 징그럽게도 닮아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우울한 느낌이 드는 것 역시 지울 수 없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국’을 뒤흔든 ‘핵심몽’을 꾼 ‘청과물 상인’에 대해서 그가 판 야채나 과일의 종류, 물건을 배달한 시간, 물건의 신선도 등을 끝없이 조사하는 것처럼 현실을 장악하고자 하는 시스템은 ‘개그만도 못하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꿈’을 나만의 것으로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조사관’에게 자발적으로 적어서 제출할 것인가이다. 우리가 ‘꿈’을 적어서 제출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해석’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