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성숙을 위한 재료, 책

성숙이란 단어는 ‘생물의 발육이 완전히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즉, 성숙이란 모든 생명체가 겪는 일련의 과정 중 하나로, 이 단계를 거쳐 하나의 생명체는 완전한 개체가 되는 것이다. 인간도 모든 생명과 마찬가지로 커가면서 성숙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성숙은 신체적·생물학적인 성숙일 뿐,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성숙의 의미가 아니다. 몸이란 그릇에 맞춰 그 속의 알맹이, 즉 마음도 무르익어야 진정한 성숙이라 할 수 있다.

장은 담고 나서 오랜 기간 기다려야 깊이 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세월에 숙성되고 깊어져야 진득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장과 달리, 인간은 오랜 기간이 지나도 성숙한 어른이 되기 어렵다. 현대사회에는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도 ‘철이 들지 않는’ 어른들이 종종 있다. 어른과의 대화 속에서 세월의 지혜를 얻는 것이 어려워진지도 오래다. 잡다한 지식들은 많이 알지만 그 깊이는 한 척도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은 세대를 타고 내려갈수록 더욱 심화되어 간다. 고등교육을 받는 대학생들의 말은 이전에 비해 무게감이 없어졌고, 신중치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아무런 느낌조차 받지 않는다. 오로지 배운 것들에서만 옳고 그름을 가리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행동한다. 예전에도 이런 어른들이 있었지만, 현대사회의 ‘어른 같지 않은 어른’보다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 몸은 컸지만 마음은 여전히 성숙치 못한 상황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필자는 미성숙한 어른이 되는 원인이 바로 ‘책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 생각한다. 앤드루 랭은 “책으로 한 나라의 상당 부분을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책 한권에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책이 작은 지식부터 한 시대를 아우르는 담론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매체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책을 우리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읽어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화책과 과학책, 위인전의 책장을 넘겨가며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책들은 학교를 들어가고 교과서로 대치되며, 정작 인생에 중요한 책들은 우리들의 삶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잡기가 꺼려지고 거부감이 들게 된다. 이 상태로 성인이 된다면, 당연히 책을 읽지 않게 되고, 교과서에서 겉핥기식으로 배운 지식들만을 가진 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대학생 한 달 평균 독서량이 ‘한권 이하’인, 책을 읽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 비해’ 낮은 독서량을 지적하는 통계들이 기사화되어 나온다. 필자는 책을 많이 읽어라 권하는 것이 아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독서에 대해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라 말했던 것처럼, 많이 읽는 것이 아닌 깊이 있게 정독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이러한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내·외면으로 성숙한 인간이 된다면, 그거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배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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