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속 다크 투어리즘, 일본식 가옥

 ‘다크 투어리즘’이란 전쟁·학살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재해가 일어난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군산에는 ‘역사’에 관한 건물과 장소가 많은데, 특히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번 호에서는 군산 속 다크 투어리즘의 일부로, ‘일본식 가옥’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려 한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있는 군산 속 일본식 가옥 2곳을 지금부터 살펴보자.

일제 강점기부터 군산 의료에 힘쓴 이영춘 박사의 자취 '이영춘 가옥'

 

▲ 이영춘 박사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영춘 가옥은 현재 군산시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물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건물로, 군산시 개정동에 자리하고 있다. 먼저, 이영춘 박사는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현대까지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료인으로, 일생을 농촌보건사업에 헌신하며 많은 활동을 통해 농촌 보건과 공중 보건 및 기생충 박멸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1935년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현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동) 구마모토 농장 부속 자혜 진료소 소장으로 초빙된 이후 구마모토 농장의 소작인들을 상대로 무료 진료 왕진을 다녔다. 이어 1939년에는 개정초등학교에 우리나라 양호 교사 제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20평 규모의 위생실을 두었다. 후에는 대야국민학교와 화호국민학교 등에 위생실을 신축하여 기증하고 양호 교사를 채용하여 아동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데 힘썼다.

이영춘 박사가 머물었던 이 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였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 주택으로 알려졌는데, 이영춘 박사가 1935년부터 이 건물을 위탁, 관리하고 거주하면서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영춘 박사는 거주하면서 기존의 부엌을 입식으로 만들고, 일식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다. 가옥은 요철이 많은 평면 구성으로, 현관과 응접실에서는 서양식 벽난로를 설치하였고 안방은 일본식, 관리인 숙소는 온돌방 형태로 서양식, 일본식, 한국식의 특성이 절충되어 있다. 이는 1945년 해방 이후에 이영춘 박사가 설립한 재단 법인 한국농촌위생원 소유이었으나 현재는 학교 법인 경암 학원 소유로 변경되었다. 또한, 2003년 10월 31일에는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200호로 지정되었다. 과거보다 조금씩 변형된 부분이 존재하지만, 건축물의 구조와 내·외부 공간 구성, 장식 등에서 원형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편이라 많은 한국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또한,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현재는 쌍천 이영춘 박사 전시관으로 조성하여 관람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다. 이영춘 가옥은 일제강점기 때의 토지 수탈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영춘 가옥 입장료는 없으며, 연중무휴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 이영춘 가옥 / 출처 : 전라북도 공식 블로그

일제강점기 일본인 신흥 부자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 히로쓰 가옥 / 출처 : 중앙일보

일제강점기 군산지역의 유명한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건축한 2층의 전통 일본식 목조가옥이다. 히로쓰 게이샤브로는 대지주가 많았던 군산지역에서 상업으로 부를 쌓았으며 군산에서 포목점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이는 일제강점기 군산의 가옥 밀집지인 신흥동 지역의 대규모 일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존된 건물이다.

이곳에는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 2채가 있고 두 건물 사이에 꾸며진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놓여 있는 것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 판벽과 화벽으로 이루어졌고, 지붕은 박공지붕과 합각지붕에 기와를 얹어 이루어졌다. 자연석을 깐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가느다란 사각기둥이 세워져 지붕 기후가 짜인 방식이다. 현관 부분의 지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 형식이고 처마 밑에 함석판을 덮은 차양이 덧달아져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 2칸이 있다. 특히, 1층의 온돌방은 한국의 문화를 일본인 부자들이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장군의 아들>, <타짜>, <바람의 파이터> 등 여러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 건물은 전라북도 군산시 신흥동 58-2번지에 있다. 2005년 6월 18일에는 국가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6월 18일 ‘군산 신흥동 구히로쓰 가옥’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8월 21일 현재의 명칭인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으로 변경되었다. 건물의 형태는 근세 일본 무관의 집으로, 고급주택 양식을 띄고 있다. 국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일반 관람객을 위하여 개방되며 변형된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근세기 건축물에 비교하면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이렇게 역사가 담긴 군산의 두 가옥을 알아보았다. 그 시절 일본식 가옥의 구성과 더불어 군산에서 활동한 한 의료인의 흔적도 알 수 있었고, 우리 조상의 암울했던 모습도 유추할 수 있었다. 가옥이 아름다워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그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묘해지기도 한다. 가옥 이외에도 군산세관, 동국사, 근대건축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등 군산에서 다크 투어리즘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아주 다양하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군산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군산을 더 알아가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시 되새겨보며 교훈을 얻어가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