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군산은 바다와 섬, 그리고 땅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역사를 담고 있는 땅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비롭고 무궁무진한 바다와 땅을 딛고 살아가는 군산 사람들의 옛날 옛적을 어떠했을까? 지금부터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바다와 강에 둘러싸인 군산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군산의 역사에는 구석기시대란 아예 없었다. 구석기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이 보고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1년 군산-장항간 철도 공사 구간 발굴조사 중 내흥동에 위치한 군산역 부지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내흥동 유적이라 이름 붙여진 구석기 유적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되는 밀개, 긁개, 몸돌 등 구석기 유물과 목재편, 씨앗류 등 유기물이 출토되었다. 유기물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유물층의 연대를 알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함과 동시에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 유적 하나를 통해 군산에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로인해 군산의 시대 연표를 다시 작성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까지 단 한 곳에서만 구석기 유적이 조사되었지만 앞으로 또 다른 곳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조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유적의 의미가 매우 깊다.
본격적으로 이 곳 사람들이 바다와 강을 활용하고 더불어 살기 시작한 증거는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난다. 군산은 고군산군도 뿐 아니라 육지 가까이에도 비응도, 노래섬, 새섬 등 작은 섬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 섬들 사이 바다를 메워 자동차공장과 조선소 등 각종 공장들이 즐비한 군장국가공단이 들어서 있어 언제 여기가 바다였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넓은 땅이 되었다. 이 섬들 중 육지에서 가장 멀리 있던 비응도는 새만금 방조제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공단을 조성하기 전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군산 연안 대부분의 섬에서 기원전 4,000년~2,500년에 이르는 신석기시대 유적이 20여 곳이나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조개무지유적으로 조개더미(貝殼層), 야영지와 같은 유구와 불을 피우던 야외노지가 조사되었다. 이는 섬에서 일상적인 생활 보다는 조개와 물고기가 풍부한 시기를 따라 한시적으로 지내면서 바다로부터 먹을거리를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개더미는 조개껍질을 한 곳에 계속 버리면서 쌓여 이루어진 쓰레기장이다. 지금의 쓰레기장을 생각해보라. 그 곳에는 비록 온전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쓰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그만큼 쓰레기장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적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응도 등에서 조사된 조개더미층 속에는 조개껍질 뿐 아니라 빗살무늬토기, 낚시바늘, 그물추, 화살촉, 도끼, 땅파는 도구, 갈돌과 갈판, 동물뼈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먹거리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유물이 가득 담겨있어 신석기시대의 군산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신석기시대 군산 사람들은 주로 어떤 조개를 먹었었는지, 어떤 물고기를 좋아했었는지, 동물은 무엇을 잡았었는지와 같은 그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해준다.
신석기시대 조개무지는 발굴조사된 군산 연안의 섬 외에 고군산군도의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음이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신석기시대 유적이 군산에서 가깝든 멀든간에 섬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군산의 조개더미 유적은 단순히 한 시대, 한 시기 사람들의 흔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어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를 지나 지금까지도 끊임없이를 형성되고 있음을 볼 때 그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군산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주어진 삶을 살기위해 바다를 이용하며 열심히 살아온 흔적을 많이 남겼다면, 다음 시대인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이 땅에 무엇을 남겼을까? 문득 이것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