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나
끝없이 올 것 같았던 비가 그치고 9월이 찾아왔다. 방학은 마침표를 찍었고 다시 달려야 할 가을이 시작됐다. 시작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고 하지만 봄과 가을의 시작은 다르게 느껴진다. 봄은 계주의 첫 주자로 누구도 밟지 않은 트랙을 개척하는 느낌이라면 가을은 전 주자의 바통을 이어받아 그 땀과 속도를 토대로 뛰는 느낌이다. 어느 쪽이 더 수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트랙을 달리는 기분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자연스레 숨차는 일상에 스며들 것이다.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는 가을은, 끝없이 놓인 트랙에 남겨진 나의 흔적 때문에 ‘사실은 이미 뛴 길을 또 다시 뛰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바통을 준 사람도 나고 바통을 받은 사람도 나인 경기처럼 말이다.
사람은 과거에서 가져오는 것들로부터 현재가 결정되고 만들어지며 그 결과로서 살아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우리는 과거가 될 현재에서, 미래의 나를 위해 치열하게 달리고자 한다. 그러나 종종 과거의 미련과 현재의 고통 때문에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2학년 1학기에 언론사에 들어와 거의 매달 빠지지 않고 기사를 썼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총 14개의 기사를 작성했다. 한 달, 그리고 하루들이 지날 때는 몰랐지만 되돌아보니 꽤 많은 양의 글이 되었다. 매달 기사를 쓰는 것은 작문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글은 쓰면서 는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검색만 하면 쏟아지는 인터넷상의 무수한 기사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한 기사를 몇 번이고 고치기도 했다. 언론사 부팀장이 된 이후에는 기사의 완성도에 더욱 신경을 썼다. 부팀장은 팀원들의 기사를 첫 번째로 교정하는 업무가 있는데 내 글도 못 쓰면서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고치는 것은 스스로의 기준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기사를 작성하는 일에 몰두할수록 글 쓰는 것에 대한 재미와 부담을 동시에 얻었다. 글을 쓰는 재미는 언론사 기사뿐만 아니라 일기나 에세이, 감상문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나의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는 글쓰기 활동에 도전할 용기도 줬다. 하지만 부담은 내가 쓴 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실력에 대한 갈증을 만들었다. 글에 있어서만큼은 적당히라는 타협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미완성의 글을 삭제하고 꽤 오랜 시간 글쓰기를 외면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부담도 결국 나의 결과물을 만들게 해줬으며 그 결과물을 이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준 셈이다. 내가 우연히 선택한 언론사나 동아리, 망설이다 어렵게 말을 건넨 사람들 등과 같이 과거의 내가 한 시도들은 내가 내 세상에만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세상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줬다. 여전히 후회와 부담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나는 그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하는 방법을 알아가고자 한다.
우리가 뛰고 있는 트랙에는 우리의 노력뿐만 아니라 도망쳤던 기억과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남아있다. 그 순간을 다시 겪을 수 없고,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없는 것들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있어 최선은 지나간 시간과 선택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꾸준히 현재를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시간에 갇혀 후회할 일이 많겠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들이 어딘가를 여행하다 곧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달릴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에는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준다는 생각으로 멋진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의 작은 시도가 미래의 나에겐 큰 발판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