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추억, 그 경계선 사이를 지나
무더운 여름의 더위가 지나고, 어느덧 파란 가을 하늘과 붉은 단풍이 캠퍼스를 물들였다. 나는 이번 황룡담을 읽는 독자들이 개강 후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는 독자들이 지난 학기를 토대로 이번 학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보내려 하는지, 지나간 시간에 남겨진 여운이 우리의 가슴 한 켠에 여전히 자리한다면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대한 궁금증이다.
지난 학기, 나는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제작기초실습’이라는 2학년 수업을 수강했다. 해당 수업은 미디어문화학과생으로서 본격적으로 영상 촬영 및 편집에 관해 기초를 다지고 실습을 통해 제작 능력을 향상할 첫 기회이다. 미디어문화학과생이라면 꼭 들어야 할 수업이라고 생각했지만, 2학년 그 당시 나는 꽤나 겁을 먹고 있었다. “한 번도 장비를 다뤄본 적이 없는걸.”로 시작해서, “장비를 대여하는 방법조차도 몰라.”라며 망설였다. 실상은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한 건데도, 지레 겁을 먹고 주저했다. 그리고 이내 아무것도 모르는 2학년의 내가 아닌 무언가 성장했을 것만 같은 3학년의 나에게 이 무거운 짐을 넘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3학년의 나 역시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숫자로 보여지는 학점만 좋을 뿐 부끄럽지만 미디어문화학과생으로서 실습 능력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편이다. 그런 나에게 이 수업은 기회인 동시에, 시련이었다. 개인으로 제출해야 하는 두 자유주제의 영상과 제출 이후 팀을 구성해 제작해야 했던 광고, 뮤직비디오, 영화 패러디까지 이미 지나고 좋은 작품들과 결과를 맺었음에도 이따금 아찔해진다. 편집장으로서 해내야 했던 업무와 더불어, 수강했던 총 20학점의 수업들, 그리고 매주 영상 기획과 제작을 반복했던 당시, 고단했던 에피소드가 무수한 와중에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묻었던 한 문장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 문장의 되새김은 영화 패러디 시기에 극에 달하기도 했다. 시험이 있던 전날까지도 밤을 새워 편집하며 한 시간 후에는 작품을 발표하러 발걸음을 옮겼고, 두 시간 후에는 타 과목 시험을 치렀던 때가 있었다면 믿기겠는가.
종강 이후, 종종 작품들을 다시 꺼내 재생해보곤 했다. 영상이 끝나고 검은 화면 속 비춰진 만감이 교차한 표정이 웃펐다. 나쁜 기억은 경험이 되고 좋은 기억은 추억이 된다고 생각하는 나인데, 지난 학기는 나쁜 기억이라서 경험이었던 게 아닌, 단어 그대로 무언가를 처음 배워보면서 실행해보았던 경험이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 더욱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았다.
새로운 학기를 맞이할 때면, 우리는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야만 그 끝에 비로소 무언가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작보다도 어쩌면, 마지막에 남은 경험과 추억이 우리를 또 다른 시작점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경험과 추억, 모호한 경계선 사이에서 우리는 비로소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의 순간이 힘들다면 되뇌어보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