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동하기 쉬운 단어(3)
앞에서 조리와 관련된 동사들 중에서 미묘한 뜻의 차이를 보이는 단어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일반 동사들과 형태가 비슷해서 혼동하기 쉬운 조리 관련 동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달이다’와 ‘다리다’
(1)가. 한약 {달여/다려} 드립니다.
나. 바지를 {달여/다려} 줄을 세웠다.
‘달이다’와 ‘다리다’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달이다’는 ‘액체 따위를 끓여서 진하게 만들다.’ 또는 ‘약제 따위에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다.’라는 뜻을 지닌 조리 관련 동사이다. ‘다리다’는 ‘옷이나 천 따위의 주름이나 구김을 펴고 줄을 세우기 위해 다리미나 인두로 문지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이다. 따라서 (1가)에서는 각각 ‘달여’가 맞고 (1나)에서는 ‘다려’가 맞는다. ‘달이다’의 경우 소리 나는 대로 쓰지 않고 ‘-이-’를 밝혀 적는 이유는 ‘달이다’가 자동사 ‘달다’에 사동접미사 ‘-이-’가 붙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자동사 ‘달다’에는 ‘물기가 많은 음식이나 탕약 따위에 열을 가하여 물이 졸아들다.’라는 뜻이 있다. 한편 ‘(바지를) 다리다’는 더 작은 의미 단위로 쪼갤 수 없다. 곧 ‘달-+-이-’로 분철해서 표기할 근거가 없기에 소리 나는 대로 ‘다리다’로 적는다. 참고로, ‘다리미’가 ‘다리다’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기억하면 ‘다리다’와 ‘달이다’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절이다’와 ‘저리다’
(2)가.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다./저리다.}
나. 나는 발이{절여도/저려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절이다’는 ‘푸성귀나 생선 따위에 소금기나 식초, 설탕 등이 배어들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조리 관련 동사이다. ‘저리다’는 ‘뼈마디나 몸의 일부가 오래 눌려서 피가 잘 통하지 못하여 감각이 둔하고 아리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이다. 따라서 (2가)에서는 ‘절이다’가 맞고, (2나)에서는 ‘저려도’가 맞는다. ‘절이다’의 ‘-이-’를 밝혀 적는 까닭은 ‘달이다’에서 ‘-이-’를 밝혀 적는 까닭과 똑같다. 곧 ‘절이다’가 ‘배추가 소금에 절다.’의 자동사 ‘절다’에 사동접미사 ‘-이-’가 붙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발이) 저리다’는 더 작은 의미 단위로 쪼갤 수 없기에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
‘무치다’와 ‘묻히다’
(3)가. 콩고물을 {무친/묻힌} 떡
나. 콩나물을 {무치다./묻히다.}
‘무치다’는 ‘나물 따위에 갖은 양념을 넣고 골고루 한데 뒤섞다.’라는 뜻을 지닌 조리 관련 동사이다. ‘묻히다’는 ‘가루, 풀, 물 따위를 그보다 큰 다른 물체에 들러붙게 하거나 흔적이 남게 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이다. 따라서 (3가)에서는 ‘콩고물을 묻힌 떡’이 맞고 (2나)에서는 ‘콩나물을 무치다.’가 맞는다. ‘묻히다’는 ‘콩고물이 손에 묻다.’의 자동사 ‘묻다’에 ‘-히-’가 붙어 만들어진 사동사이다. ‘무치다’는 더 이상 작은 의미 단위로 나눌 수 없기에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
‘삭히다’와 ‘삭이다’
‘삭히다’와 ‘삭이다’는 둘 모두 자동사 ‘삭다’에 사동접미사가 붙어 만들어진 사동사이다. 그런데 그 뜻이 다르다. 두 사동사는 자동사 ‘삭다’가 지닌 여러 가지 뜻 중에서 서로 다른 뜻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4)가. 밥을 {삭혀/삭여} 끓인 감주
나. 분을 {삭히다./삭이다.}
다. 요즘 위가 좋지 않은 먹을 것을 제대로 {삭히지/삭이지} 못한다.
사동사 ‘삭히다’는 자동사 ‘삭다’의 의미 중 ‘김치나 젓갈 따위의 음식물이 발효되어 맛이 들다.’라는 뜻에서부터 만들어진 사동사이다. ‘삭히다’에는 ‘발효 과정’이 동반된다. 한편 ‘삭이다’는 ‘삭다’의 의미 중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다.’와 ‘긴장이나 화가 풀려 마음이 가라앉다’라는 뜻에서부터 만들어진 사동사이다. 따라서 (4가)는 발효 과정이 동반되므로 ‘삭혀’가 맞고 (4나)는 ‘삭이다’가 맞는다. (4다)의 경우 ‘발효’가 아닌 ‘소화’와 관련되므로 ‘삭이지’가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