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동하기 쉬운 단어(4)

한국어의 모음 중 발음의 구별이 거의 없어진 것이 있다. ‘애’와 ‘에’가 그것이다. 표준어 규정에서는 이 두 소리를 구별해서 발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서울에서도 50대 이하에서는 두 발음의 구별이 없어졌다. 두 모음의 발음이 구별되지 않게 되면서 표기에서도 혼동이 생겼다. 그러나 발음이 구별되지 않는다고 해서 표기마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혼동하기 쉬운 표기 몇 가지를 살펴보자.

‘매다’와 ‘메다’
 
 (1)가. 신발 끈을 단단히 매었다.
    나. 뙤약볕 아래에서 콩밭을 매었다.
 (2)가. 어깨에 배낭을 메었다.
    나. 나는 너무 기뻐 목이 메었다.

(1가)의 ‘매다’는 ‘끈이나 줄 따위 묶어서 풀어지지 않게 마디를 만들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1나)의 ‘매다’는 ‘논밭에 난 잡풀을 뽑다’라는 뜻이다. (1가)의 ‘매다’와 (1나)의 ‘매다’는 소리와 철자는 같지만 전혀 다른 단어, 곧 동음이의어이다. 한편 (2가)의 ‘메다’는 ‘어깨에 걸치거나 올려놓다’라는 뜻을 지닌다. 그리고 (2나)의 ‘메다’는 ‘뚫려 있거나 비어 있는 곳이 막히거나 채워지다’라는 기본 뜻에서 확대되어 ‘어떤 감정이 북받쳐 목소리가 잘 나지 않다’라는 비유적인 뜻으로 쓰였다. (2가)의 ‘메다’와 (2나)의 ‘메다’ 역시 동음이의어이다.

‘-대’와 ‘-데’

 (3)가. 서울에는 벌써 눈이 내렸대.
    나. 그이가 말을 아주 잘하데.

(3가)의 ‘-대’는 ‘-다고 해’의 준말이다. ‘-대’는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남이 하는 말을 듣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쓰인다. 앞에 ‘누가 그러는데’와 같은 표현을 넣을 수 있다. 반면 (3나)의 ‘-데’는 화자가 직접 보고 안 사실을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이는 말로 ‘-더라’와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앞에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해 보니’ 정도의 표현이 올 수 있다.

‘결재(決裁)’와 ‘결제(決濟)’

 (4)가. 서류를 결재했다.
    나. 숙박비를 카드로 결제했다.

(4가)의 ‘결재(決裁)’는 결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아랫사람이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하는 것을 말한다. ‘결재’는 ‘문서 결재’, ‘서류 결재’, ‘결재를 올리다’, ‘결재를 받다’, ‘결재가 나다’, ‘결재가 떨어지다’와 같은 구성으로 쓰인다. 반면 (4나)의 ‘결제(決濟)’는 어음이나 대금 따위를 주고받아서 매매 당사자 사이의 거래 관계를 끝맺는 행위를 말한다. ‘결제’는 ‘카드 결제’, ‘어음 결제’ 등처럼 쓰인다.

‘왠지’와 ‘웬’

 (5)가. 오늘은 왠지 이길 것 같아요.
    나. 갑자기 웬 눈이지?
    다. 웬일로 여기까지 다 왔니?/

(5가)의 ‘왠지’는 ‘왜인지’의 준말로 ‘왜 그런지 모르게’ 또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의 뜻으로 쓰인다. ‘웬’은 ‘어찌 된’, ‘무슨’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5다)의 ‘웬일’은 ‘어찌 된 일’의 뜻을 지닌 합성어로서 붙여 쓴다. ‘웬지’, ‘왠’, ‘왠일’이라는 단어는 없다.

‘채’와 ‘체’
 
 (6)가. 토끼를 산 채로 잡았다.
    나. 일하기 싫어 아픈 체했다.

(6)의 ‘채’와 ‘체’는 둘 다 의존명사이어서 앞 말과 띄어 쓴다. (6가)의 ‘채’는 주로 ‘-는/-은 채’, ‘-는/-은 채로’의 형태로 많이 쓰여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라는 뜻으로 쓰인다. (6나)의 ‘체’는 주로 ‘-는/-은 체하다’의 형태로 많이 쓰여 ‘거짓으로 꾸미는 태도나 모양’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