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문학상 문학부문 당선(시)

가로등

내가 살던 곳에는
추락한 별이 하나 있었다.
어둡고 외진 골목길
밤하늘을 더 이상 떠돌 수 없게 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필라멘트를 아껴서 태우며
명멸하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너는 그를 끌어내렸고
그럼에도 그는 우리들을 탓하지 않았다
모조리 끌어낸 밤하늘에 이젠 별은 없고
그럼에도 우리는 끌어냄을 멈추지 않는다
별들의 눈물은 이 도시 위에 흩뿌려진다
우리는 그 위에서 웃는다
기쁜 웃음으로 웃는다

 

고도1)는 그렇게 말했다.

어느 틈에 창문에 하늘이 갇혔다.

그러면 창문이 더 큰 것인가 하늘이 더 큰 것인가 갑자기 아리송하고 묘한 게 날 쿡쿡 찔러 뭔가 생각이 날 법도 한데 그 순간 사다리가 내게 묻기를 그럼 난 하늘을 올라가야하나 아니면 하늘을 찔러야하나 여태까지 하늘을 올라가는 것으로 알았건만 난 왜 회의감이 드나

라고 하니 잠시 내가 대답하려 하는데 어어 이런 이 기분 어찌해야하나 이건 뭔가를 놓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이 언제부턴가 나는 24k 순금과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액자를 만들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어느새 사람들은 이런 나를 바라보며 약간은 이지적이고 경박하게 최대한 포장을 내용물에 담아 입 꼬리를 실룩실룩 옴짝달싹 알록달록 쿵쾅쿵쾅하기에 난 잠시 쉬어 무얼 만들지도 못한 채 삶의 원동력과 맛있는 당근을 잃어버렸나 했는데 그 순간, 여기 내가 왔다. 라고 말하는 고도

1) : 사뮈엘 베케트 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나오는 인물. 고도는 주인공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유없이 갈망하며 기다리는 존재이지만 희곡에서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소감
우선 이 졸작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잘해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큰 상은 제게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수상을 제 문학적 관점과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재인식시켜주며, 좀 더 먼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준 채찍질이라 여기고 앞으로 더욱 정진해나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텍스트란 작자와 독자가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자가 던진 하나의 텍스트가 다양한 수용자를 만나 저마다의 모양으로 다르게 변화해가는 그 과정에야말로 문학의 본질이 숨겨져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 시를 읽고 내린 각각의 해설을 저의 시선으로 획일화시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만,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제가 무슨 관점에서 무엇을 느끼고 시를 썼는지 궁금한 분들이 계실까봐 몇 자 적어 올리겠습니다. 읽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안 읽으셔도 좋습니다.
(1) ‘가로등’은 문득 생각난 시입니다. 도시의 밤하늘에는 별이 없고, 도시의 지상에는 은하수처럼 별이 흘러넘칩니다. 그 많은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혹시 다 떨어져버린 건 아닐까요. 떨어졌다면 과연 누가 떨어뜨린 걸까요. 저는 우리가 그 많은 별들을 다 떨어뜨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시가 바로 ‘가로등’입니다.
(2) ‘고도는 그렇게 말했다.’는 어찌 보면 독후감 같은 시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제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납니다. 저는 책에서 나오는 ‘고도’를 인간이 지향해야할 존재라고 봅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는 건지, 당근을 기다리는 건지 애매한, 나약하며 무기력한 존재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당근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아닌 창틀을, 그림이 아닌 액자를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액자와 창틀을 의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고도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도는 그것들을 의심해야만 올 수 있는 거라고, 확신합니다.
사실 저는 제 시를 내놓기 참 부끄러운 시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제 시에 대한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상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기억에 남는 시를 짓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