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피역과 군산선 철도
대야에서 임피로 연결되는 711번 지방도로에서 술산리로 이어지는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광장에 면한 목조 건물을 만나게 된다. 뾰족한 박공지붕이 눈에 띄는 이 건물이 군산 임피역이다. 임피역은 1912년 개통된 익산역에서 군산역을 연결하는 군산선의 철도역 중 하나로 생겨났다. 현재 남아있는 임피역 건물은 1936년에 지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군산선 철도역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이다. 근대기 철도역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지난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지어졌던 철도역 건물은 그 규모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에 사용된 건축 양식도 다양하였다. 최근 ‘문화역 서울 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옛 서울역은 서양 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모방했던 철도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또한 지금은 없어진 옛 군산역처럼 일식 목조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도 있었고, 옛 전주역처럼 한국의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을 모방한 건축물도 있었다. 임피역과 같은 건축물은 1920년대 중반 이후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고, 건축물을 경제적으로 손쉽게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벽체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형태적으로도 건물 정면의 삼각형 박공면 만을 두드러지게 계획하는 등 간결하고 표준화된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일반적으로 건축 문화재는 해당 건축물의 미적인 또는 기술적인 우수성이나 완성도, 희귀성,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의 관련성 등이 문화재 지정의 이유가 된다. 그러나 임피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일반적인 이유와는 달리, 근대기에 거의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어 지어졌던 소규모 철도역의 성격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임피역과 같은 건축물은 전체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재료와 구조, 공법 등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함으로써 대량생산에 의한 경제성과 효율성의 가치를 추구했던 건물이다. 표준화에 의한 경제성과 효율성의 추구 역시 건축에서의 근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측면 중 하나이다.
철도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근대 건축을 특징짓는 중요한 유형의 건축물이다. 우선 철도의 건설은 근대기 건설 산업의 형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규모 건설 회사의 형성과 다양한 계약이나 공사수행 방식 등 오늘날 건설 산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많은 특성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또한 철도역은 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종류의 건축물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철길에 나란히 놓인 철도역은 마치 철길처럼 무한히 확장될 것 같은 경계가 모호한, 새롭고, 거대한 공간의 건축물이었다. 또한 매우 다양한 기능이 결합된 복합적인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익명의 대중이 모여드는 새로운 만남의 공간이었고, 추상화되고 기계화된 근대적 시간에 의해 지배받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철도와 철도역은 위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 및 수탈과 밀접하게 관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철도의 부설은 전통적인 도시 구조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에 의해 의도된 철도 계획은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진 전통적인 도시의 쇠퇴와 일본과 연결되는 항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도시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왔다. 철도를 이용하여 일본에 의해 도시 구조가 재편된 것이었다. 군산선 철도는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한 육상 교통으로써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육상 교통과 해상 교통이 만나는 접점으로써의 항구는 철도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철도가 처음 부설되면서 철도역은 대부분 도시의 바깥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군산의 경우에도 최초의 외국인 거류지가 형성되었던 격자형 가로망의 외곽으로 철도역이 위치하게 되었고, 전주에서도 전주성 바깥에 철도역이 위치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철도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확장되면 철길은 도시를 양분하는 장애물이 되고, 철길과 철도역 주변은 도시에서 가장 볼품없는 지역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한때는 도시에서 가장 번화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간이 어느덧 애물단지처럼 취급되기도 하는 것이다. 도시와 건축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평가되면서 마치 생명체처럼 성장과 쇠퇴와 변신을 계속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