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의 탄생

인격의 탄생
                                                                           여태천

당신이 서 있는 곳으로 볼을 던졌다.
당신의 머리 위로 날아간
볼은 정확하게 다시 돌아왔다.
측정할 수 없는 운명의 거리를 가고 오는 볼과 볼.
그 사이에 떨어진 구름과
그 구름을 끌어내린 공기의 이동.

캐치볼을 하다 당신을 놓쳤다.
세상에 하늘이 노랬다.
피가 모자란다고 까만 명찰의 간호사가 말했다.
하얀 베드 위에서 엉덩이를 까고
내일이 올까 말까 고민했다.

시력이 문제가 아니라 피가 모자란단다.
당신이 서 있는 곳으로 다시 볼을 던질 수 없단다.
볼을 던지지 못하는 건 치명적 외상이라고
생각이 당신과 나 사이를 오고 가는데
당신이 꽃을 들고 문병을 왔다.

당신이 가만히 와서 내려놓고 간 인사.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이 서 있는 곳까지 답례를 했다.
꽃을 든 당신과 이미 땅에 떨어진 구름과
하얗게 소독된 이 세계는
그러므로 완벽했다.
인격은 그렇게 완성됐다.
     

 


인격은 타인과의 관계를 상정한 표현입니다. 혼자인 존재는 인격이 없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 스스로에게 인격을 부여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일반적으로 관계란 존재와 존재 사이의 일입니다. 물론 단독자로서의 존재도 자기 자신과 내적 관계를 맺을 수는 있겠으나, 관계는 적어도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비롯된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이 작품은 나와 당신이라는 존재의 관계에서 ‘인격의 탄생’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캐치볼’ 놀이에서 시작하고 있네요. 캐치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놀이입니다. 둘이나 그 이상이 모여 서로 볼을 주고받는 놀이를 캐치볼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캐치볼에서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언제나 ‘캐치’가 용이하게 ‘볼’이 날아가거나 날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혹은 실수로 혹은 무심코 혹은 고의로 문제는 발생합니다. 어떤 볼은 상대의 면상을 맞추기도 하고 어떤 볼은 지붕 위로 날아가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갑자기 상대방이 사라져 더 이상 캐치볼이 불가능해지는 데 있을 것입니다.
“캐치볼을 하다 당신을 놓쳤”을 때, 그 이유를 모르는 화자는 당황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하늘이 노랬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상상력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하늘이 노래지는 것은 피가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진단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당신을 놓친 것 역시 시력이 문제가 아니라 피가 모자라기 때문이라네요. 캐치볼에서 상대방을 잃고 “볼을 던지지 못하는 건” 과연 “치명적 외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신이 꽃을 들고 문병”을 옵니다. 관계의 극적인 회복인 셈이지요.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해 / 당신이 서 있는 곳까지 답례”를 합니다. ‘인격’의 ‘탄생’과 ‘완성’은 이렇게 이루어진다네요.
캐치볼에서 인격의 탄생을 살피고 있는 이 신선한 작품에서 존재와 존재의 관계에 대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관계란 캐치볼처럼 “측정할 수 없는 운명의 거리를 가고 오는 볼과 볼”과 같은 것이고, 이를 통해 “인격의 탄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