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의 미덕
혹시 주변에 우울과 무기력을 토로하는 인물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 사람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 주거나,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싶거나, 그런 마음도 없이 외면하는 것 중에 답이 있을 것이다. 사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선택지 중 감히 더 나은 답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본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필자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생각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람은 의사소통하지 않고서는 사회화될 수 없다. 생각과 감정을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건강한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모두가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가장 외곽에 고립되어 있거나, 사고를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종종 스스로 불건강한 신호를 맞이하게 된다.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생활의 장애가 생길 때 내가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주변에서 어떻게 하느냐’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고립된 상황, 정신적 충격을 불러오는 사건 등으로 정신질환 및 사회생활 장애를 겪는 인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정신질환자가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 싶다면 그런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지난 5년간 899만 명, 즉 전 국민의 약 5분의 1은 우울 및 불안장애의 진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본인의 우울을 진단하지 못하는 숫자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비율이다. 우리 주변에도 도움이 필요한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기관이 우울 및 정신질환에 대해 계속해서 보도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신질환과 폭력 및 범죄가 아주 병리적인 사회 현상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우울증과 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일부 우울증 진단을 받은 환자가 정신질환이 없는 정상인과 비교했을 시 강력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주변에 우울을 토로하는 인물이 있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사회와 주변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가장 처음에 언급한 ‘의사소통’이 핵심이다. 종영 드라마인 MBC의 <지붕뚫고 하이킥> 중, 가족 내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인 정보석이 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자 가족들은 모두 정보석의 치료를 위해 믿음과 사랑이 담긴 응원을 보내는 에피소드가 있다. 유쾌한 시트콤으로 각색된 이야기지만 들여다볼수록 말의 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을 인정하고, 자기 인정을 통해 타인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관계에 대한 여유를 가지게 된다. 온전히 자기 생각을 다정한 단어로 전해줄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정 영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미완성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절대적인 진리를 깨우치고 있는 사람은 결코 없다. 불이 뜨겁다는 것, 얼음은 차갑다는 것 모두 지도와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 인정들은 선을 만들고, 선들은 모양을 만들고, 그러한 모양은 다시 우리의 삶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삶은 곧 나의 태도로 귀결되는 것이다. 나와 아무 상관 없을 수도 있다. 결코 마주칠 일이 없는 완전한 타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필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글을 적을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자. 당신이 내밀 손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