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람>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맞는 말이다.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설탕이 부족할 때, 중요한 물건이 배송 왔지만 받을 수 없을 때, 이웃집은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최근에야 이런 경험 자체도 거의 드물긴 하지만 말이다. 강 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이웃사람>은 “이웃”에 대한 다른 시선에서 시작한다.
엄청난 살인행각을 벌인 사이코 패스 범죄자들도 다 누군가의 이웃이었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무섭다. 모르는 사람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안다는 이유만으로 약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범죄자들은 그 허물어진 틈 사이로 살의를 심는다.
문제는, 밝혀지지 않는 범인에 대한 의심들이 하나 둘 씩 발견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동네 가방 가게 아저씨는 빨간 트렁크를 사 간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 내고, 피자 배달부 소년은 남자의 규칙적 배달 패턴에서 수상한 점을 찾아낸다. 뭔가 비밀이 있는 듯한 경비원은 심지어 의심스러운 남자의 집을 찾아가 결정적 증거를 목격하기도 한다. 수채 구멍에 피에 얼룩진 머리카락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범인은 밝혀졌다. 관객도, 등장인물도, 누가 범인인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범인을 신고하지 못한다. 가방 가게 주인은 괜히 경찰서에 오가며 장사에 지장만 줄 것이라며 외면하고, 피자 배달부 소년은 입대일이 얼마 안 남았다며 관심을 거둔다. 결정적 단서를 손에 쥔 경비원은 자신의 비밀이 탄로날까봐 애써 사실을 모르는 척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이웃이 가장 공포스럽겠지만, 영화는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범죄는 시작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이 위험은 두 번째 살인 가능성으로 점점 구체화된다. 죽은 소녀와 같은 학년인 아이가 오가자, 범인은 그 아이 역시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분리수거물 중에서 사라진 소녀의 교복을 발견한 경비원은 이미 살해한 후이다. 만일, 그를 의심했던 주변 사람들이 먼저 신고만 했어도 경비원은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 김복남은 자신을 괴롭혔던 남편 형제뿐만 아니라 그녀가 당한 수모를 보고도 모른 척해 온 마을 사람들에게도 복수를 감행한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모르는 척 외면해 온 사람들도 공모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영화 <이웃사람> 역시 그렇다고 말한다. 이웃사람으로서 관심을 기울일 때 위험한 이웃사람의 손에서 우리의 아이, 우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이다.
강 풀의 만화는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아파트>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이 영화화되면서 만화와의 싱크로율을 상당히 신경써왔음을 알 수 있다. <이웃사람> 역시 한 장면, 한 장면 원작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어떤 점에서 이 유사성은 재창조의 어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화로 보았을 때 충격적이었던 장면들이 스크린상에서 어쩐지 나약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충실한 재현보다는 창조적 재해석이 더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이웃사람> 역시 강 풀의 만화 원작이라는 점이 강조된 재현작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 싶다. 그다지 새로운 부분은 없고, 원작의 아우라를 쫓아간 흔적은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