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상 부문 심사평

올해 황룡문학상은 전반적으로 응모작이 적었고 작품 수준 역시 예년에 비해 저조한 편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올해는 응모 자격을 완화하여 문학을 열망하는 교내외 문학 지망생의 참여를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안고자 했던 터라, 그것을 통해 신나고 즐거운 지적 축제의 장을 만들려 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아마도 유독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시절이 하수상해서일 것이다. 이 하수상한 세상에서 각자의 고통과 분노를 형식화, 형상화, 간접화하는 것은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광장이 뜨거워지면 문학판은 쓸쓸해지는 법, 그런 역사가 또 한 번 온 것이겠거니 하고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시/수필> 부문은 응모작이 예년의 1/3 수준으로 격감하였고 작품 수준 역시 예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무엇보다 <시/수필>의 갈래적 특성을 이해하고 수준 높은 독서 활동을 바탕으로 창작 훈련을 쌓은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점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었다. 시 부문의 경우, 산문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압축미가 떨어지는 표현을 구사하거나 비유와 심상이 전혀 없이 관념적 진술로 일관한 응모작이 많았다. 무엇보다 시적 형상화의 대상이 될 만한 경험을 선별하고 조직하며 구체화하는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명(2작품)이 응모한 수필 부문의 경우, 비교적 문장 훈련이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조로부터 어떤 의미 있는 성찰을 이끌어내는 사색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다.
올해 <시/수필> 부문에서는 이진원의 <달팽이>(군산대학교 나노화학공학과 2학년)를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세련된 비유나 섬세한 이미지를 찾아보기 어렵고 시적인 압축미도 떨어지지만, ‘달팽이 집’과 ‘플라스틱 통’이란 우의적 장치를 통해 소외와 단절, 존재의 고독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려 한 점에 주목하였다. 좋은 시란 시적 형상화 능력과 사색의 깊이가 행복하게 결합할 때 탄생한다. 앞으로 풍부한 시 읽기와 시 쓰기 훈련에 정진하여 좋은 시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소설/평론> 부문 역시 응모작이 격감했다. 수준 또한 우리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특히 5편이 투고된 소설 부문의 부진은 끝내 아쉬웠다. 소설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은 자신만의 고통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잘 표현해야 그만큼 더 인정받는, 그래서 발언권을 확보하기 힘든 하위주체들에게 가장 우호적인 지적 영역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의 고통을 자기 홀로 증명해야 하는, 그러므로 자기의 고통을 자신만의 역사철학으로 맥락화하여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하위주체들에게 절대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형식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소설은 세상이 ‘쓸모없는 실존’으로 홀대하는 각자의 트라우마를 표출하되 각자의 고통을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핵심적인 증상으로 맥락화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올해 소설 부문 응모작은 소설의 중핵을 이루어야 할 핵심 요소, 그러니까 개인의 트라우마도 그것에 대한 역사철학적 문맥화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밀도 있고 개성적인 문장도 찾기 힘들었고 이야기의 혁신성도 없었으며 전제와 부분의 유기적 연관성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소설/평론> 부문에서 위안을 주었던 것은 평론 쪽이었다. 특히 올해 <소설/평론> 부문 가작으로 선정된 박승채의 ?참된 시 비평과 시 연구를 위한 제언?은 제목만큼이나 의욕적이고 도전적인 글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도전적인 글이 흔히 범하기 쉬운 논리의 비약이나 자의적인 해석 또한 찾기 힘들었다. 성실하고 많이 준비된 글이었다. 하지만 ‘참된 시비평’을 위해 왜 굳이 최근의 신춘문예 시당선작을 대상으로 선택했는지에 대한 역사철학적 근거가 미약했다. 뿐만 아니라 대상 작품을 어떤 유형화도 하지 않은 채 단순나열한 것은 요령부득이었고, 분석 대상의 시들을 다른 시들과 전혀 비교?대조?유추하지 않은 채 각 시의 내적 요소들을 반복적으로 서술하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많이 아쉬웠고, 또 이것 때문에 젊은 지성만이 발휘할 수 있는 패기가 돋보이는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으로 뽑을 수 없었다.
시절이 수상하다. 이 세상이 사이비 효율성에 내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시대야말로 시와 문학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우리의 삶을 규정지으려 하는 저 사이비 효율성에 인간의 진정성과 가치 있는 삶을 맞세우려는 문학의 정신이 되살아나 이 세상을 향해 거센 분노의 목소리를 낼 때가 아닌가 한다. 광장이 뜨거워지면 문학판은 쓸쓸해지지만, 그래도 그 광장의 뜨거움이 있을 때라야 문학판이 발전하고 진화하곤 했으니, 지금 광장에 쏟아지는 관심이 내년에는 문학적 활기로 도래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부디, 내년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 구성원들이 황룡문학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가 기대하는 바로 그 작품을 흔쾌한 마음으로 선보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