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부문 대상 수상작 (시)
야외 수업
뒷산의 초록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살구나무 둥치에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앉으면
영영 사랑하게 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네 사주팔자엔 온통 木자뿐이구나
나무가 많으면 숲이 된다지만
밖엔 아무도 없다. 발뺌하듯이
뒷산에서 살아남은 여러 해 살이 잔디와
애인을 바꿔 온 사람들
오래전 유행이 돌아오던 여름에
죽은 잎이 새 잎을 키우고
전 애인의 얼굴선보다
죽은 잔디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나무가 언제부터 그렇게 길러졌는지
나무가 되어야만 나무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있다
떨어진 살구를 짓밟던
오랜 사랑을 꿈꾸던
몇몇의 연인
*
나무를 어떻게 다뤄야 나무가 될 수 있나
연필을 쥐거나 나뭇가지를 부러트리기도 하고
무너지는 흙에 넘어지는 나무를 일으켜보기도 한 지난 장마
거기에 숲이 있었다는 건 분명했지만
사랑에 대해서 쓰기로 한다
살구를 줍거나 엉덩이 골이 깊이 파인 그 나무에 대해
지지대에 기대어 자라는 나무들이 다 자라도
울창하다는 기분을 말하지 않았고
나는 우연히 아는
나무의 이름이 많았다
사라지고 다시 자라고 어떤 게 사랑인지 분명히는 몰라도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이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