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황룡학술문학상 학술부문 가작 (테마에세이)

 

소설과 게임의 비교, 대조

소설원작 게임과 게임원작 소설을 중심으로 

 

 

Ⅰ. 소설과차세대 문화로서의 게임

 

비교와 대조는 어떠한 대상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다. 예를 들면 외장 SSD의 크기에 관해서 설명할 때 외장 SDD하나만 가지고서는 얼마나 큰지 감이 잘 안 잡힐 것이다. 하지만 USB보단 크지만, 외장 HDD보다는 작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외장 SSD의 크기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이다.

이 글에서는 소설과 게임을 비교 대조를 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안 좋은 인식 때문에 게임이 소설과 비교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글을 쓰면서 게임에 대한 여러 안 좋은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학교에서 게임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했을 때 유해한 사이트라며 게임관련 사이트가 막히는 것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고,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논문 주제에 관해 얘기했을 때에도 놀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식의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은 코로나 시국과 더불어 가장 많이 발전한 문화 콘텐츠이고,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에서 까지 게임 관련한 진출을 노리고 있을 정도로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차세대 문화라고 할만하다. 또한 안 좋은 시선 같은 경우는 소설도 게임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문체반정같이 탄압받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게임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은 나온 지 100년도 안 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기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즉 게임은 충분히 소설과의 비교가 가능한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영화와 동일하게 상호작용이 없이 감상하는 구조이다. 물론 영화의 경우에는 인터랙티브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시도되고 있고, 소설 속에서도 그러한 시도가 있기는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상호작용이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소설과는 다르다. 게임은 영화나 소설과 같이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구조가 아니다. 게임에 직접참여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소설과는 달리 영화처럼 시각적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상문화의 면모도 있다. 게임에서 나오는 컷 신 같은 경우는 거의 영화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질적인 두 가지를 비교한다면 효과적으로 비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게임과 소설을 비교하는 논문을 작성하게 되었고, 소설과 게임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게임원작 소설과 소설원작 게임을 활용하고자 한다. 게임과 소설을 비교하는 데에 게임원작 소설과 소설원작 게임을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첫째로 그럼으로써 좀 더 효과적인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장면이나 비슷한 요소에 대해서 소설에서는 어떠한 식으로 표현했는지, 게임에서는 어떤 식으로 구현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게임 원작의 소설, 소설원작의 게임은, 그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표성을 띄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거나. 그러한 거대한 작품을 노렸기 때문에, 원소스멀티유즈, 게임원작 소설이나 소석원작 게임으로 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의 마케팅으로 소설을 냈을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라도 일정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돈 한 푼 없는데,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소설을 내놓을 수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기준점의 문제에 대해서도 효과적일 것이다. 알겠지만 게임과 소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저 게임과 소설의 비교라고만 한다면 그 대상의 게임에는 바둑도 될 수가 있고, 혹은 바다 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게임도 있고, 리니지와 같은 과금유도를 많이하는 게임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준을 게임 원작 소설과 소설원작 게임으로 설정한다면 비교,대조 대상을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으로 한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게임 원작 소설과 소설원작 게임을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글에서는 <반지의 제왕>-<레고 반지의 제왕>,<-위 쳐 3>-<위 쳐 이성의 목소리>, <앨런웨이크>-<앨런웨이크>, <디아블로>-<디아블로 호라드림 결사단>, 이렇게 네 가지의 경우, 총합 여덟 가지의 게임 원작 소설, 소설원작 게임이다.

이들을 정한 이유는 이들 게임이 각각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소설이거나 게임이기 때문이고, 각 장르를 어느 정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 4가지 종류의 게임 원작 소설, 소설원작 게임을 비교, 대조함으로서 각각의 특징들을 알아보고, 게임 원작 소설과 소설원작 게임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이다.

 

 

2. 과정의 전면화와 선택지의 도입 ; 원작소설 기반 게임을 통해 본 게임의 특성

 

(1) 서사의 전경화와 과정의 전면화 - <반지의 제왕>-<레고 반지의 제왕>

 

우선 <레고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 영화의 연출을 따라가긴 하지만, 게임 내의 서사 진행이 원작 <반지의 제왕>의 큰 틀을 따라간다. 평화롭게 살던 호빗 마을에서 어느 날 간달프가 찾아오고,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 말이다. 결국 프로도의 여정은 반지를 파괴함으로써 성공하고, 프로도가 떠나면서 여정은 끝이 난다.

 

 

이 게임과 원작소설 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게임의 그래픽이 레고라는 것이다. 비유법 같은 것이 아니라. 이 게임은 그래픽이 진짜 레고로 되어 있다. 또한 그래픽만 그런 것이 아니라. 레고가 핵심적인 장치로 작동하여 원작소설과의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면 게임의 진행 중에도 레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임 상에 있는 숨겨진 레고 부품들을 캐릭터들의 다양한 능력을 활용하여 부품을 찾아내어 그것을 조립해서 다리를 만든다거나. 모닥불을 만들어 강력한 적인 나즈굴을 쫓아낸 다거나 하는 식으로 사용된다.

 

게임 그래픽이 레고라는 것은 게임이기에 나오는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레고 반지의 제왕>을 소설로 쓰는것을 상상해보도록 해보자. 상상되는가?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픽을 레고로 만드는 것은 게임으로 표현하기에 더 적절한 소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레고를 소재로 이렇게 쓴다고 해보자.

 

레고 나즈굴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부품들을 모아서 모닥불을 만들어야 했다. 레고 샘은 레고 모닥불을 만들기 위해서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혹은

레고 프로도와 샘은 레고 나무에 매달려 레고 부품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구멍과 구멍을 이어서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고로 만든 다리기 때문에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역시나 게임에 비해서는 그 맛이 살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레고가 강력한 소재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게임이 영화와 같은 시각적 매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레고 반지의 제왕>은 아니지만 레고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소로 원작소설과 진행면에서 세세한 차이가 생기는데, 소설의 경우에는 나즈굴을 쫓아낼 때 이런식으로 나오지만.

 

그는 희뿌연 안개 속으로 성큼걸이가 양손에 불 붙은 장작을 들고 어둠 속에서 뛰쳐나오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그는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칼을 던지고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어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게임속에서는 나즈굴을 쫓아내는 데에는 모닥불 5개가 필요한데, 이를 진행하는 순서는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게임 진행 중 여러 가지 레고 재료를 모아와서 게임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어떤 재료를 먼저 가져올지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 있다.

 

(2) 선택지의 도입과 스토리의 재구성 - <위쳐 이성의 목소리>-<위쳐3>

 

<위쳐3>는 <레고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원작과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위쳐1,2>같은 경우 원작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위쳐3>는 원작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와일드 헌트를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때문에 소설에 비해 더 자유롭다는 게임의 차이점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위쳐> 소설과 <위쳐3>를 전체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위쳐 이성의 목소리> 속 단편 <피해가 더 적은 것>과 <위쳐3> 게임 속 <피의 남작>이라는 퀘스트를 중심으로 설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위쳐 이성의 목소리> 중 <피해가 더 적은 쪽>이라는 단편에서 주인공인 게롤트는 렌프리와 스트레고보르 사이에 누구를 선택을 강요당한다. 렌프리는 어릴 적 스트레고보르가 자신을 괴물로 몰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에 대한 원한관계에있고, 사람들을 모아 그런 스트레고보르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렌프리는 나오지 않는다면 마을사람들을 하나씩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주인공인 게롤트는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 갈등한다. 스트레고보르는 주인공에게 그런 렌프리를 죽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설득한다. 소설 속에서 게롤트는 결국 렌프리를 죽이고 만다.

다음으로 <피의 남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피의 남작이 잃어버린 아내를 찾는데, 아내는 늪지에서 크론이라는 괴물 밑에서 고아원을 만들어 일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는 이 이야기 진행 도중에,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나무 악령과 조우한다. 나무 악령은 고아원의 아이들이 위험하다며, 자신을 풀어주면 고아원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이 나무 악령을 풀어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여기서 소설과 게임의 차이가 보인다.

 

“게롤트……날 좀 안아 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렌프리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길바닥에 한쪽 뺨을 댄 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

다. 지금까지 그녀가 몸속에 숨겨두었던, 날이 아주 작은 단도 하나가 뻣뻣해진

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자, 어서, 게롤트,”

마법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마차를 가져오게 그녀를 탑으로 데려가자고 부검을 해야 하니까.”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독자는 소설의 서사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죽은 사람에 대한 존중 따위는 없이, 여전히 괴물 취급하며 부검까지 하자는 스트레고브의 짓거리에 화가 나더라도 독자는 선택을 바꿀 수 없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 비해 이러한 선택의 갈림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면 렌프리를 돕겠어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생각일 뿐 실제로 랜프리를 도와서 소설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 하다못해 작가에게 직접 스트레고보르대신 렌프리를 도왔다면 어떤 내용이 되었을 지에 관해서 물어볼 수도 없다. 설령 물어보더라도 작가가 말해주기를 꺼릴 수도 있고, 작가를 직접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나무악령을 풀어줄지 말지 플레이어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스토리를 재구성 할 수 있다. 이는 소설에서는 나오기 힘든 게임만의 연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무악령을 풀어준다면, 정말로 고아원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결과적으로 피의남작과 피의남작의 아내가 죽는다. 여기서 나무악령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고아원의 아이들은 죽는다. 하지만 피의남작과 아내는 살아남는다. 물론 아내가 미쳐버린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선택지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좀 더 높은 몰입감과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내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직접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토리를 재구성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고, 또는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생보다는 못하지만, 소설보다는 좀 더 인생에 가깝게 구현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택지 시스템이 무조건적인 장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위의 <피의 남작>같은 경우는 선택지 시스템의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잘 짜이지 않은 선택지는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무력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기억하기만 하겠다고 하고, 실제로는 아주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스토리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워킹데드>와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또한 반대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하게 풀어내기 힘들게 하며 주제의식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선택지 시스템이 소설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않는 이유 또한 그와 관련이 클 것이다. 소설은 게임보다 더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은 게임과는 달리 서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선택지 시스템은 그러한 의도가 흐려지기가 쉽다.

또한 선택지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소모하는 인력이나 노력에 비해 서사의 진행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돈을 많이 투자해서, 선택지를 잘 구현해서 좋은 선택지를 만든다면 좋겠지만 돈만 투자하고 제대로된 선택지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제대로 구현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만큼, 선택지 시스템은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레고 반지의 제왕>과<위쳐3>모두 소설에서는 하기 힘든 연출 방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잇다. <레고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는 레고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원작을 재구성 하는 것을 보여주고, <위쳐3>같은 경우는 선택지 시스템을 도입하여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레고 반지의 제왕>의 경우 소극적이고, <위쳐3> 더 적극적이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가지 경우 모두 소설과는 달리 참여도가 높아지는 모습이 보여지고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몰입감이 높아진다. 이것이 게임과 소설의 대표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서사의 귀환과 심리묘사의 강화 ; 원작 게임의 소설화를 본 소설의 특성

 

(1) 과정의 축소와 서사의 귀환 ; <앨런웨이크>-<앨런 웨이크>에서의 전투 차이

 

원작 게임과 소설 간의 비교, 대조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전투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앨런웨이크>는 2010년 5월에 엑스박스로 나온 호러 어드벤쳐 슈팅 게임이다. 게임의 장르에 수식어가 많은데, 그만큼 이 게임은 특이한 게임이라고 생각된다.

이 게임의 큰 목적은 바로 아내 구하기이다. 당연하게도 이 목적 앞에서 앨런은 어둠 속의 괴물들의 습격, FBI의 방해 등 다양한 위기를 겪게 된다. 이상한 사실은 그것들이 바로 앨런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소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아내를 구하기 위하는 과정에서 앨런은 브레이크 콜스와 관련된 어둠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결국 자신을 희생하고 아내를 구하게 된다.

소설의 서사는 큰 틀에서 게임과 같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게임과 대조해볼 때 전투가 현저히 적다. 소설에서는 큰 전투가 아니라면 빠진 전투요소가 많다. 예를들어 게임에서는 처음 납치범을 만나기 위해서 다리를 지나가는 장면에서, 갑자기 물건들이 습격해온다는 전투요소가 있는데, 소설에서는 이 장면이 배제되었다.

하지만 게임 같은 경우 전투, 그리고 또 전투라고 할 정도로 전투가 많다. 소설은 전투 장면은 그냥 보기만 해도 되는 것과는 다르게, 게임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에는 또 다시 전투를 해야 한다. 게다가 난이도가 그렇게 쉬운 편도 아니기 때문에, 안 그래도 게임이 소설이 비해 전투가 많은데, 게임에 완전히 숙달된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같은 전투장면을 몇 번씩 반복하는 경우도 흔할 것이다. 그리고 반복하는 만큼, 플레이어가 체감하는 전투의 양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처음으로는 이것은 게임과 소설의 시점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의 시점은 내가 직접 앨런 웨이크가 되어서, 앨런 웨이크를 조작해서 전투를 치른다. 게다가 다양한 그래픽 효과들은 더 큰 재미를 준다. 소설처럼 텍스트로 보는 것보다 전투가 좀 더 역동적이다.

그에 더해서. <앨런웨이크>의 전투시스템은 다른 게임과는 차별화된 특징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의 슈팅 게임은 총을 쏴서 적의 체력을 깎으면 적이 죽지만 앨런웨이크는 적의 체력이 어둠의 보호막과 물리적 데미지, 두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일반적으로 먼저 손전등이나 조명탄 같은 것으로 어둠의 보호막을 벗겨내고, 리볼버나 샷건 사냥용 라이플 같은 것으로 물리적인 데미지를 가해야 적이 죽는다. 예외로 섬광탄과 같은 강한 빛은 적을 한방에 죽이는 것도 있고, 박쥐와 같은 약한 적은 그냥 손전등 빛으로도 죽는다.

어쨋거나 이러한 특징적인 전투구조로 인해서 <앨런웨이크>는다른 게임보다 더 자원의 관리가 중요해진다. 권총의 탄약이 아무리 많아도, 혹은 강력한 물리 공격 수단인 샷건이나 사냥용 라이플의 탄약이 아무리 많아도, 어둠 보호막을 벗기지 못하면 적을 죽일 수 없다. 반대로 조명탄이나 손전등의 배터리가 아무리 많아도 리볼버나 샷건으로 물리적인 데미지를 가하지 않는다면 적을 죽일 수 없다.

 

……앨런은 사냥꾼에게 총을 겨누고 심장을 정확히 쏘았다. 그러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사냥꾼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런데 앨런이 뒤로 물러

면서 사냥꾼을 제대로 손전등을 비추자, 사냥꾼이 움츠러들면서 팔로 눈을 가리는

것이었다. 불빛을 계속 비추고 있으니 피범벅이 된 사냥꾼의 옷이 치직거리면서

들어 갔다. 앨런은 다시 총을 쏴보았다. 탄환이 사냥꾼의 얼굴에 명중하자 몸 전

가 휙 타오르더니 흩날리는 불똥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칼이 고함을 치면서 미친 듯이 파이프 렌치를 휘둘러댔다. 그러는 동안에도

앨런의 손전등 불빛은 놈을 뒤덮은 어둠의 장막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칼의 눈꺼

이 파들거리는 게 보일 만큼 가까워졌을 때, 앨런은 마침내 리볼버를 발사했다.

러고 칼에게 계속 불빛을 비추면서 연거푸 총을 쏘았다. 심지어 탄창을 다 비운

에도, 놈이 밤의 어둠 속에 녹아 사라진 뒤에도, 앨런은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

다.……

 

소설은 몇 번을 읽어도 소설은 이렇게 똑같은 전투 일 것이다. 여기엔 그 어떤것도 들어갈 여지가 없다. 하지만 게임은 같은 장면이어도, 플레이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위의 칼 스터키와의 싸움에서도 어떤 플레이어는 왼쪽으로 먼저 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혹은 오른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는 손전등이 먼저 쏠지, 아니면 이번에는 조명탄을 쏠지, 리볼버로만 넘길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전투라고 해도 계속해서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의 전투가 소설보다 재미가 있기에 게임은 소설보다 전투가 더 많이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에서 생각해보면, 서사는 게임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점도 이러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전투만 있는 소설을 상상해보도록 하자. 상상이 잘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즉 소설에는 서사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게임은 <테트리스> 같은 게임은 아예 서사가 없다. <타이탄 소울즈> 같은 극단적으로 보스만 잡는 게임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에서 서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서사를 너무 이상하게 진행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2> 같은 게임의 경우에는 오히려 몰입감을 깬다는 평가를 넘어서, 시리즈를 망쳤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혹평을 받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게임에서의 서사라는 것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그러한 계륵 같은 면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소설에는 앨런의 심리묘사나 정확한 상황 같은 것이 더 자세하게 표현되어있다. 게임에서는 앨런이 어둠이 무서워졌다는 것이나. 그 외 아내에 대한 마음 같은 것을 정확하게 알기가 힘들지만, 소설에서는 예시와 같이 직접적으로 서술된다.

 

……앨리스는 어둠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원래 앨런은 앨리스의 공포를 피상

으로만 이해했었다. 어린 시절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잠들기 무서워했던 것을, 벽

속이나 침대 밑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을까 봐 무섭다고 칭칭 거리면 엄마가 달

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앨리스의 심정도 그렇겠거니 넘겨짚었다. 나비가 징그럽다고

무서워하거나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하다고 꺼리는 것처럼, 아무런 현실적인 근거도

없는 사소한 망상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어둠 속을 둘러보

니 앨런은 공포로 이가 떨리는 걸 주체할 수 없었다.……

 

이렇듯 게임은 소설보다 서사의 비중이 적은 편이고, 반대로 소설은 게임보다 서사의 비중이 강한 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있지만, 그러한 게임의 경우 거의 소설에 가까운 텍스트나 컷 신의 양이 소설과 다름없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그러한 게임의 경우라고 해도, 소설보다는 전투의 비중이 많은 편이다.

 

(2) 반복의 불가능성과 심리묘사의 강화 ; <디아블로1, 2, 3>-<디아블로 호라 드림 결사단>

 

<디아블로>는 RPG 장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디아블로1>은 처음으로 실시간 방식이 도입된 RPG 게임이었고, 아이템의 색에 따라 등급이 바뀌는 시스템을 제일 먼저 한 것도 <디아블로>였다. 그만큼 RPG를 대표하는 게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주제중 하나로 <디아블로>를 선택한 것이다.

먼저 <디아블로> 시리즈는 핵 앤슬래쉬 게임으로 성역을 위협하는 악마를 처치하고, 디아블로를 막는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디아블로2> 같은 경우는 안다리엘을 죽이고, 메피스토를 죽이고, <디아블로3> 같은 경우는 레오릭, 도살자 등을 죽이는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결국 목표는 디아블로를 막고 악을 막는 것이다.

소설 <디아블로 호라드림 결사단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디아블로2>의 이야기가 끝난 후, <디아블로2>에서 플레이어들의 아이템을 공짜로 감별해주던 중요 NPC 중 하나인 데커드 케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데커드 케인은 어머니로부터 악마를 막기 위해 탄생한 고대의 비밀결사 호라드림의 후손이라는 것을 듣지만, 그것을 어머니의 망상같은 거짓으로 치부하며 살았는데, <디아블로>, <디아블로2>의 사건으로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고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디아블로2>의 사건이 끝난 후에도 악마들의 위협은 계속되고, 데커드 케인은 그러한 악마들의 위협을 막기 위해서 악마들을 막기 위해 탄생한 고대의 비밀결사 호라 드림 결사 단을 찾아 떠난다. 여행의 끝에 호라 드림 결사단은 기존의 고대의 호라드림과는 별개의 단체로 사실 거짓의 군주 벨리알이 신생 호라 드림의 수장인 가레스를 속여 세상에 헌신하기 위해 만든 단체임을 깨닫게 되지만, 그것을 가레스에게 알리자 가레스는 자살하며, 벨리알의 헌신을 막고, 신생 호라드림은 악마의 농간으로 탄생한 단체이지만, 그런 만큼 오히려 악마를 막기 위해 힘을 쏟을 것을 결의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여기서 소설의 재미있는 점이 두 가지 있는데, 소설에서 게임적 요소와 관련된 비유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대천사 아우리 엘 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듯 영적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이는 일반적인 소설이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이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디아블로>를 플레이한 플레이어임을 어느정도 전제로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하나는 <디아블로1> 에서 디아블로를 처치한 어둠의 방랑자가 아이단 왕자라는 것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 <디아블로2>의 시점까지는 나오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그저 어둠의 방랑자라고만 언급되었을 뿐이었다. 이는 <디아블로3>의 출시와 함께 세계관을 개편하면서 설정이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디아블로2>같은 경우 소설보다 전투가 더 많다는 점이 더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바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보통은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같거나 비슷한 장면을 열 번이고 백번이고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메피런,바알런과 같은 방식으로 칭한다. 물론 소설의 경우에도 그렇게 반복해서 보는 경우가 있지만, 재감상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다시 읽는 것이지 같은 곳을 반복해서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촛불은 흔들리며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괴물이 발을 쿵쿵 울리며 다가오면서

책상을 뒤엎어 어둠 속으로 날려버릴 듯 위협하자 케인은 강렬한 공포에 사로잡

다. 케인은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문 쪽으로 다가갔지만, 괴물이 쫓아와 그를 바

에 때려눕히려는 듯 곤봉처럼 생긴 긴 손을 뻗었다.……

 

이 장면을 수백 번 반복해서 읽는다고 해보자. 과연 그것에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까? 하지만 게임에서는 똑같은 보스를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수백 번 반복해서 죽인다. 소설이라면 금방이라도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디아블로2>에서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것을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을까?

이는 전직 게임개발자 유튜버 G식백과가 언급했듯. <디아블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랜덤성과 성장성에서 비롯된다. 우선 첫 랜덤적 요소로<디아블로>에서는 같은 장소라고 해도 똑같은 맵이 나오지 않는다. <디아블로2> 같은 경우는 일정 맵의 요소를 조합해서 랜덤하게 맵이 나온다. <디아블로3> 같은 경우에는 정해진 맵들에서 랜덤하게 나오기 때문에 <디아블로2>보다는 떨어지지만 어쨌거나. 랜덤한 맵이 나온다.

 

또 같은 공격이어도 피해량이 랜덤하게 들어간다. 예를 들자면 22레벨 기준의 화염 구의 공격력은 67-92이다. 67에서 92의 피해량이 랜덤하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고의 캐릭터 기준일 뿐, 다른 장비를 끼고 있는 캐릭터는 또 다른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몬스터에게 랜덤하게 붙어나오는 능력, 화염 저항이나. 강함 같은 것이 들어간다.

이러한 것들을 넣으면 디아블로를 잡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똑같은 보스인 디아블로나 바알을 잡으러 가는 과정에서도 그 길에 도달하는 맵이나. 몬스터의 구성, 혹은 피해량 같은 것이 모두 다르다. 똑같이 디아블로나 바알을 잡으러 가는 것이지만, 그 과정은 계속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디아블로 호라드림 결사단>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이다. 애초에 <디아블로 호라드림 결사단>의 내용이 독자가 그것을 펼칠 때마다 랜덤하게 약간씩 달라진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것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그렇다 쳐도, 제대로 된 내용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똑같이 디아블로를 잡으러 가는 것이라고 해도, 캐릭터의 강함은 계속해서 달라지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진다. 경험치는 계속해서 오르고 아이템이 계속해서 좋아지기 때문이다. 레벨이 낮을 때에는 화염 구 같은 약한 공격을 써서 잡는다. 하지만 레벨이 높아지면 얼음 보주와 같은 더욱 강력한 스킬을 사용해서 같은 상황을 더욱 쉽게 해쳐나갈 수 있다.

또한 <디아블로>는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여서 난이도를 조절해 반복하더라도 쉽게 질리지 않게 만든다. 이러한 것들을 살펴보면 난이도 그래프는 매끄러운 우상향 그래프가 아니다. 그렇게 할 경우 게임이 쉽게 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래프를 표현해보자면, 들쭉날쭉한 그래프가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것으로도 한계가 있다. 때문에 디아블로의 제작사인 블리자드에서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추가했다. 그중에 하나가 래더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래더와 스탠다드라는 다른 분류가 있고, 래더에 있는 캐릭터는 시즌마다. 주기적으로 스탠다드로 이동된다. 즉 새로운 시즌에는 래더에서 1레벨부터 키워서 다른 사람과 레벨을 올리는 경쟁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속작인 디아블로3 같은 경우는 모험모드, 균열이나 대균열 같은 요소를 추가했다.

물론 이런 것으로도 같은 것을 반복시키는데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그 때문에 디아블로의 제작사인 블리자드에서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추가했다. 그중에 하나가 래더 시스템이 있다. 래더와 스탠더드라는 다른 분류가 있고, 래더에 있는 캐릭터는 시즌마다. 주기적으로 스탠다드로 이동된다. 즉 새로운 시즌에는 래더에서 1레벨부터 키워서 다른 사람과 레벨을 올리는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후속작인 <디아블로3> 같은 경우는 모험 모드, 균열이나 대균열 같은 요소를 추가했다.

<디아블로 호라드림 결사단>과, <앨런웨이크>소설 두 경우 모두 원작게임에 비해서 전투요소가 적다, 하지만 반대로 인물의 심리 묘사 같은 것은 게임에 비해서 더 많이 들어갔다. 게임에서는 이러한 반복적인 전투, 혹은 많은 전투를 위해서 랜덤적인 요소나 성장적인 요소를 추가했음을 알 수 있다.

 

4. 감정이입과 흉내내기 – 소설과 게임를 비교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

 

마지막으로 네 가지의 경우에서 모두 드러나는 것을 살펴보려고한다. 게임이 소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퀘스트 구조이다. 그리고 네 가지의 경우 모두에서 퀘스트 구조가 보인다.

 

소설의 퀘스트 구조는 김희준, 이동은(2019)이 말한 것처럼 영웅의 여정을 위한 구조적 장치로 활용되었다면, 게임의 퀘스트 같은 경우는 플레이어가 게임의 서사를 이끌어갈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해준다.

또한 김미진, 김상우(2011)와 같이 퀘스트 같은 경우 커다란 목표 하나만을 제시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보면서 예를들어 보자면, <앨런웨이크>같은 경우는 어떠한 전투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디아블로>와 같은 경우에는 똑같이 안다리엘을 잡으러 간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의 직업이나, 장비 npc에게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는 등에 따라 플레이어가 체험하는것이 달라진다. <레고 반지의 제왕>에서는 어떤 순서로 퀘스트를 진행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위쳐3>는 아예 퀘스트에서 선택지가 있다.

김희준, 이동은(2019) 게임의 퀘스트가 서사적 장치가 강화될수록 오히려 결말을 제한하고 통제해야한다는 모순점을 지적하였다. 대표적으로 <앨런웨이크>와 같은 경우예와 같이 다른 게임에 비해 퀘스트의 자유도가 약한 면모를 보인다. <위쳐3>의 선택지 같은 경우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다음으로 네 경우 모두 게임일 때 컷 신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컷신은 게임의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이다. 게임플레이만 가지고는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앨런웨이크>를 예로 들어보자면, <앨런웨이크>는 컷 신 단계가 아닌, 플레이 단계에서는 소설의 원고나 아니면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서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플레이를 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게임의 서사에 집중하기보다 오롯이 게임플레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앨런웨이크> 같은 경우는 잦은 전투로 인해서, <레고 반지의 제왕>은 퍼즐을 풀지 못했을 때, <위쳐>나 <디아블로>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와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 것도 이것 나름의 서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한 힘을 얻기 위해 노력하거나. 고난을 극복하는 서사는 소설에도 있다. 하지만, 제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서사를 보여주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컷 신을 이러한 것들을 보완하는 장치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컷 신은 단점이라고는 없는 완벽한 장치인 것 같다. 하지만 컷 신은서사가 진행은 되지만,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가 되어 플레이어가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바로 직전까지 게임을 했으며 비록 느슨하고 낮은 밀도라고 할지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었던 발화자에서 수동적 이야기의 청자로 밀려나는 것이다.

 

박인성(2020)은 이러한 단점은 플레이 파트의 서사적 경험의 밀도가 높을 때 더 부각이 된다고 했다. 보완하기 위해서 게임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박인성(2020)은 그러한 다양한 방법을 서술하는데, 먼저 컷 신이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미션이나. 보스전 같은 고강도의 경험 이후에 일종의 보상의 개념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룬 게임들 중에 말해보자면, <디아블로>와 <앨런웨이크> <레고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또는 컷 신 타이밍에서도 선택지를 주는 인터랙티브 무비와 비슷한 방식을 말한다. 이 글에서는 <위쳐3>가 선택지 시스템으로 그러한 것과 비슷한 개념을 사용하였다.

네 가지 게임 중 <레고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는 애초에 게임의 타겟이 저 연령층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기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이 소설보다 몰입감이 높다고 말하기도 하고, 위에서도 대체로 그런 식으로 서술을 했다. 게임은 소설과는 달리 직접 플레이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원립은 프란스카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오히려 게임의 몰입감이 떨어질 수 있음을 주장했다.

 

플레이어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아바타(주인공)의 고통과 불안을 상상하지도

는다. 그래서 자연히 그 묘사 요소는 점점 뒤로 물러나고 추상적 ‘상태’만 남는다.

화면상의 하나의 표시, 가령 건강을 나타내는 추상적 숫자 하나만 남고 플레이어는

그 숫자가 0이 안 되게만 하면 된다. 숫자가 0에 다가가면 플레이어는 초조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소설/영화에서 주인공의 심한 부상에 독자/관객이 감정이입 하는

과 너무나 다르다. 그런 감정이입이 없으면 게임에 스토리가 있어도 그것을 즐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주인공인 게임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나의 스토리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하

의 전통적인 의미의 스토리일 수 있다. 그러나 내 자신에게 나의 스토리는 전통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 주장에는 일견 맞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생각해볼 법한 부분이 있다. 본고는 게임에서 소설과 달리 주인공의 고통 같은 것에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허울뿐인 흉내 내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게임에서 죽는 것이 ‘게임적 허용’으로 진정한 죽음이나 고통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들어 <디아블로>에서 내 캐릭터가 죽더라도, 경험치나의 손실, 골드의 손실, 그리고 장비를 다시 주우러 가야 한다는 페널티가 있기는 하지만, 다시 살아난다. <앨런웨이크> <레고 반지의 제왕>,<위쳐3>의 경우에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앨런 웨이크> 같은 경우, 모아두었던 소지품이 사라지고 설정된 소지품으로 돌아간다. <위쳐3>의 경우 가장 최근에 저장한 저장 시점으로 돌아가고, <레고 반지의 제왕>의 경우에는 모아두었던 코인이 사라진다. 이런 것들을 이용해 오히려 이번에 깰 가망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전략적으로 빠르게 죽거나 저장 시점을 뒤로 돌려서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게임 세계에서 캐릭터가 실제로 죽는 것이 아니고 되돌릴 수 있으니 그런 것까지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에 소설의 경우에는 다르다. 네 소설의 등장인물인 앨런웨이크나, 게롤트, 프로도, 케인이당하는 것은 모두 소설 속 세계에서 직접 일어나는 일이다. <반지의 제왕> 소설 속 에서 간달프가 발록에게 떨어지는 것은 게임에서 몬스터에게 맞는 것과는 다르다. 소설 속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위쳐> 소설 속에서 게롤트가 쇠스랑에 맞는 것은 게임 내의 몬스터인 구울에게 맞아 죽는것과는 다르다. 그 세계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것을 뒷받침하는 거로 컷 신이 있다. 문원립(2017)은 컷 신은 영화와도 다를게 없기 때문에 컷신에서는 소설이나 영화와 비슷한 작용이 일어난다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컷 신에서의 죽음이나 고통은 플레이 단계와는 달리 게임 세계에서 실제로 일이 난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당하는 것은 소설과 동일하게 모두 게임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플레이상의 총과 컷 신에서의 총은 다른 무기라는 말도 있다. 플레이상으로는 아무리 강한 공격을 맞아도 게임적 허용 때문에 실제 피해로 이어지지 않기도 하고, 역동성을 위해 그 위력도 약해지지만, 컷 신에서는 쉽게 죽고는 한다. 이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컷 신에서는 게임적 허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으로 <디아블로> 같은 경우, 하드코어라는 설정이 있는데, 이는 게임 플레이 중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합의를 깨고, 게임 플레이 중에 죽으면 그대로 죽는다. 아예 이와 비슷한 장르가 있고, <디아블로>도 그 장르에 영감을 얻어 이러한 모드를 넣은 것이다. 바로 로그 라이크라는 장르이다. 이와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더 조심하고,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게임에서 실제로 무서운 적을 만나면 보통의 게임보다 더 큰 공포감을 느낀다. 게임 플레이 중의 죽음이 실제 캐릭터의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자기가 맞을 때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소서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이러한 경우에도 게임이 소설에 비해 감정적 몰입도가 낮다고 할 수 있을까?

본 논문에서는 게임과 소설의 비교 대조, 그리고 그 방법으로 소설원작 게임과 게임 원작 소설을 활용하였다. <앨런웨이크>와 <디아블로>에서 소설에 비해 게임에서 전투장면이 더 반복적이고 많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보았고, 그에 대한 이유로 게임은 서사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레고 반지의 제왕>의 경 <위쳐 시리즈>에서는 게임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연출을 보여주었고, <레고 반지의 제왕>은 레고에 대한 연출로, <위쳐3> 같은 경우는 선택지 시스템을 예로 들어 보여주었다.

또한 네 가지 경우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종합해서 게임의 서사에서 특징적인 요소인 컷 신에 대한 것과 퀘스트 구조와 관련된 게임과 소설의 차이. 게임에 대한 감정적인 몰입감, 그와 관련한 게임에서의 죽음에 대한 것도 알아보았고, 게임에서의 게임 캐릭터의 고통이나 죽음은 소설과는 달리 감정적인 면이 아니라 그저 피해 수치로만 연결되는데, 문원립(2017)은 이것을 게임이 허울뿐인 흉내 내기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보통 게임에서의 죽음은 게임 서사 내에서 죽음으로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상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본 결과. 게임 원작 소설과 소설원작 게임의 활용으로 인해서 더 직접적으로 비교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양측에 대한 이해를 더 쉽게 하게 만든다는 초기의 목적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게임만 보았을 때, 혹은 소설만 보았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을 더욱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본 논문은 다양한 게임의 장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고, 한정적으로만 다루었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RTS 게임에는 RTS 게임이기에 소설과 다르게 드러나는 특징이 있을 것이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같은 MMORPG의 경우에는 MMORPG이기 때문에 드러나는 소설과는 다른 특징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도 모두 종합하여 총체적으로 다루었으면 어떠한 내용이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기에 이러한 것들을 다 비교하지 못하고 한정된 표본만을 활용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많은 표본을 활용해서, 장르별로 비교하며 연구를 진행한다면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참고문헌

1.참고자료

<앨런웨이크 AlanWake> 2010 레메디 엔터테이먼트

<디아블로 1 Diablo1> 1996 블리자드 엔터테이먼트

<디아블로 2 Diablo2> 2000 블리자드 엔터테이먼트

<디아블로 3 Diablo3> 2012 블리자드 엔터테이먼트

<레고 반지의제왕 Lego Lord of the rings> 2012 트래블러스 테일스

<위쳐3 와일드 헌트 Witcher3 Wild Hunt> 2015 CD 프로젝트 RED

 

 

드레 샙코브스키, 함미라 옮김 『위쳐 이성의 목소리』제우미디어,

릭 버로스, 김지현 옭김, 『Alan Wake』, 제우미디어,2014

네이트 케넌, 『디아블로3: 호라드림 결사단』, 유영희, 제우미디어2014,

안드레 샙코브스키, 함미라 옮김 『위쳐 이성의 목소리』제우미디어,2011

J.R.R. 톨킨, 김번 옭김 『반지의 제왕』 씨앗을뿌리는 사람 2011

 

 

2.참고논문

김희준, 이동은. 『게임 퀘스트의 편집가능성에 따른 플레이어의 유형 연구』. 「한국게임학회 논문지」,19판(3호), 2019,

김미진, 김상우..『내러티브 구조 관점에서 본 게임 캐릭터의 퀘스트 플레이에 대한 인터랙션 사전 시각화』.「한국게임학회 논문지」,11판(2호),2011, pp3-11.\

노선웅 「넷플릭스 5가지 모바일 게임 출시…게임 시장 본격 진출」, 서울=뉴스1 2021년 11월3일. https://www.fnnews.com/news/202111031343262669

박인성,『201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 나타나는 서사와 플레이의 결합 방식 연구 -AAA급 게임의 심리스(Seamless)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21핀 (1호), 2020,

문원립. 『게임과 전통적 내러티브의 차이』.「씨네포럼」,(26), 2017

문동열 「코로나 이후 게임 전성시대 열린다」 한겨례, 2020년 12월 15일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74238.html

 

 

김성회 [G식백과]. (2021,10.26). [퇴사한 디렉터가 밝힌 디아블로 개발비화 [디아2 레저렉션 #2] https://youtu.be/d-ho5lmmvhY

Patrick Holleman, 『Reverse Design Diablo II』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박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