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멜의 모더니티 읽기(새물결, 2005)
아침에 외출 준비를 하면서 옷은 무엇을 입을까, 신발은 무엇을 신을까 또 액세서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다는 광고로 도배된 인터넷 쇼핑몰들이나 잡지, 책들의 범람을 보면 사람이 이런 일상적인 고민들로만 일생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근대 이전의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들이 일상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즉, 이런 고민은 현대적인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우리 삶의 일부분을 이루는 모습들이다. 과거에는 개인이 집단이나 가족 등의 단체들에 강한 소속감과 의무를 가지고 집단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면, 현대 사회로 들어오면서부터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다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성의 표현에서 오는 자기만족감이 보다 우선되면서 이와 같은 고민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외출하지 않는 날에도, 아니면 휴일에 잠시 집 앞의 가게를 갈 때에도 동일한 고민을 하는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개성의 표현에서 오는 자기만족감’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본인만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고민의 강도는 거의 제로에 수렴된다. 신발이나 옷 역시 다른 사람의 평가를 위해서 착용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고, 귀걸이 같은 장신구의 경우에는 아예 그것의 착용이 스스로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어찌 보면 순전히 남을 의식한 데서 오는 행동인 셈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짐멜(1858~1918)은 이와 같이 다소 모순적인 이유들이 복합되어 발생하는 현대적인 삶의 모습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현대 사회는 동일한 조건하에 더욱더 광범위한 사회 영역을 수평적으로 창출하고자하는 방향과 반면에 개인의 독립성 및 인격 형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이 뒤섞여 있다고 진단다. 따라서 그 두 방향을 충족시키려는 상반된 경향이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유행’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짐멜에 의하면 유행은 한편으로 모방이라는 점에서 사회에 대한 의존욕구를 충족시킨다. 즉, 유행을 따르는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심리는 강한 결속력을 가진 집단에 속했던 현대 이전 시기의 충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반면에 유행은 차별화 욕구를 만족시킨다. 유행을 따르고 있는 순간의 우리는 누구를 따라서 그대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해서 개성적이라는 느낌을 갖는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유행은 현대사회의 특징적 현상 중 하나로서 “사회적 균등화 경향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들 중에서 특별한 것”이 된다.(57쪽)
이렇게 짐멜에게 현대사회에서 유행과 그 맥을 같이하는 모든 것들(의복, 신발, 장신구 등)은 그것을 선택하고 착용하는 사람들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이기적인 동시에, 실제 그것들의 착용에서 오는 즐거움이 남들에게 비춰지는 데에서 온다는 점 때문에 이타적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현대적 의미의 미학적 가치를 설명하고자 ‘손잡이’를 예로 들고 있는 것도 이해해볼 수 있다. 장신구와 같은 의미에서 손잡이 역시 병과 연결된 존재로서 예술 형식의 구성 부분인 동시에, 사람들이 병을 잡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것을 실용적인 측면의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켜주는 매개수단인 두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가장 현대적인 특질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다시 한 번 던져보자. 유행은 어째서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삶의 경향으로 뿌리내리게 되었을까? 한 마디로 대답은, ‘돈’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그의 주 저서로 널리 알려진 「돈의 철학」(한길사, 1983)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깨알만한 글자크기와 600쪽이 넘는 두께만(?) 극복한다면 분명 돈에 대한 새롭고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