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 : 역사적 가십을 우아한 판타지로 전환시키는 재치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유난히도 하지 못한다. 여러 치료사들을 전전해 보아도 효과가 없다. 그러던 중 그는 한 고집스럽고도 능숙한 치료사를 만나 차도를 만들어나갈 희망을 발견한다. 그 영민한 치료사가 자신이 화내거나 욕할 때에는 유창한 말을 생산하고, 다른 음악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는 『햄릿』의 대사를 유려하게 읽어나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결국 위압적인 아버지와 자신을 주눅 들게 했던 잘난 형 그리고 자신을 학대했던 첫번 째 유모 등 어린시절 성장과정에서의 압박요인들로부터 얻게 된 강박증의 결과를 말더듬증으로 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는 증상을 극복하며 동시에 이 치료사와 친구가 된다.
영화는 이러한 스토리라인 상 극적 전개의 리듬을 십분 활용하면서, 특별히 인위적인 조작이나 선정적인 자극의 도입 없이도, 우아한 격조를 유지하면서 그 긴장과 흥미의 점강법적 확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여기에 왕과 미력한 평민이라는 신분간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심한 불균형을 영민하게 활용하는 재치를 발휘하면서, 『킹스 스피치』는 긴장과 유머를 함께 구사해낸다. 치료사는 이 존엄한 고객을 구태여 ‘전하’가 아닌 ‘버티’로 부르기를 고집하고, 왕궁으로 불려가는 대신 자신의 사무실로 환자를 불러내는 당당함을 발휘한다. 왕자는 이에 급한 성정과 태생적인 오만함으로 저항 반발하지만, 치료사의 그 ‘뱀같은 혀’의 놀림으로 항시 정곡을 찔리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의 트라우마는 서서히 ‘다루어짐’을 받는다. 그에게 있어 ‘유려한 킹스 스피치’는 시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막중한 과업이면서 동시에 온전한 자아의 발견과 회복의 과정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시종 왕족의 품위와 우아함을 닮은 격조를 유지하던 영화는 그러나 마지막 대목에서 상당한 균형 상실의 대목을 노출시키고야 만다. 아직 불안정한 회복 상태에 머물던 우리의 신임왕은 드디어 성공적인 대관식을 마치고, 이제 일생일대의 중요한 임무를 ‘말’로 해내게 되었다. 바로 히틀러를 상대로 대영제국의 결연한 투쟁을 국민과 함께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유능한 친구의 현장도움으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국왕에게는, 온통 축하의 찬사가 쏟아진다. 이제 우리의 주인공은 ‘당당히’ 군주가 된 것이다. 때맞게 깔리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황제) 2악장의 테마와 함께!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에 참여함을 알리는 상황에서의 비장함과 심각성을 왕의 언어장애 극복에 대한 국민적 환희가 압도해버리는 것이다. 이 모두가 제목에서 약속한 대로 영화가 ‘왕의 연설’에만 집중한 결과이니, 그 일관성만큼은 나무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올 2월 미국 영화아카데미의원회는 이 전체적으로 사랑스럽고도 우아한 휴먼드라마에게 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 등 노른자위 부문에서 취우수상을 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