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맨       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발은 우리의 신체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무거운 하중을 묵묵히 견뎌내는 역할을 합니다. 흔히 맨몸, 맨손, 맨발이라고 할 때의 접두사 ‘맨-’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것이 없는’의 뜻을 더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 접두사가 신체를 뜻하는 단어와 결합할 때는 종종 삶의 덧없는 적막과 관련을 맺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맨몸으로 태어나 결국에는 맨몸을 돌아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지요.

이 작품 역시 맨발로 태어나 평생을 길 위에서 떠돌다가 결국에는 맨발로 돌아가는 우리들 인생의 길과 깊이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우선은 개조개가 바깥으로 내밀어 보인 속살과, 그 조개의 살을 맨발로 인식하는 데서 상상력이 출발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부처의 설화가 이어집니다. 열반에 든 부처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여주었다고 하는 설화가 있지요.

결국 어물전 개조개의 맨발에서 문득 부처의 발까지 이어진 셈입니다. 부처가 깨달음과 중생의 번뇌를 위해 평생을 떠돌아다니다가 열반에 들었다는 점에서, 개조개의 맨발 역시 그렇게 떠돌아다녔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맨발이 부르튼 이유도 꼭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그리된 것이라기보다는 평생의 떠돎 때문일 것입니다.

화자가 조개의 맨발을 ‘조문하듯’ 건드리는 것 역시 부처의 설화를 떠올리면 자연스럽습니다. 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제 발을 거두어갔다고 합니다. 이 속도에는 오래도록 부르튼 한 평생이 고스란히 축약되어 있으며 또한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적막한 움직임도 담겨 있습니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면 맨발과 부르튼 삶의 실제적 의미가 드러납니다. 맨발의 주인공은 양식을 탁발하러 밖에 나온 것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 맡는 역할이 이러하겠지요. 즉 가장이 부르튼 맨발로 탁발을 하고 움막으로 돌아가, 울고 있던 식솔의 배를 채워 비로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득한 일처럼 되어 버렸지만, 우리도 예전에는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의 시절을 겪었었지요. 그때 식솔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부르튼 맨발과 그 아득한 평생의 빈궁이 떠올라 마음이 자못 숙연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