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변화와 언어규범

말도 변한다. 말의 형태와 소리도 변하고, 말의 뜻과 쓰임도 변한다. 그런데 말이 너무 빠르게 변하게 되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말의 급격한 변화를 막고 언어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을 보장하는 장치 중의 하나가 말에 대한 약속, 곧 언어 규범이다. 변하는 말과  변화를 잡아두는 언어규범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서 우리의 언어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말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정립할 필요가 생긴다. 길게 볼 때 말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언어규범도 결국에는 말의 변화를 좇아 바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말의 변화를 인정하되, 의사소통을 방해할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지양하는 관점을 취하고자 한다. ‘바른말 고운 말’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언어 현상들을 살펴보려 한다.

‘-것 같아요’

‘-것 같다’는 기본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어떤 상태에 있다고 미루어 짐작하는 기능, 곧 추측의 기능을 지닌다. 다음을 보자.

(1)가. 하늘이 잔뜩 흐린 걸 보니 비가 올 것 같아요.
   나. 아까 식당에서 정우를 본 것 같은데.
   다. 무너진 건물에 갇힌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
(2)가. 너 요즘 굉장히 바쁜 것 같아.
   나. 피곤한 것 같은데, 좀 쉬어.
   다. 윤미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1)은 동사에 ‘-것 같다’가 붙은 예이다. 이 경우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 어떤 일이 일어남을 추측하여 말하는 표현이다. (1가)에서는 비가 오리라고 추측하고, (1나)에서는 정우를 보았다고 미루어 짐작하며, (1다)에서는 사람들이 살아 있다고 추측한다. (2)는 형용사에 ‘-것 같다’가 붙었는데, 기술하고자 하는 대상이 어떤 상태일 것이라고 추측하여 말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것 같다’가 지닌 추측의 쓰임이 확대되어 화자의 생각이나 의견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에도 쓰인다. 곧 상대방에게 말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좀 더 부드럽고 겸손하게 표현할 때에도 ‘-것 같다’가 쓰인다.

(3)가. (옷을 고르면서) 이 옷은 나한테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나. 사정이 생겨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요.
  다. 그것보다 이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3가)는 옷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덜 단정적으로 나타낸다. (3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화자의 의견을 부드럽게 말하고 있다. (3다)는 화자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것 같다’가 지닌 ‘완곡’의 기능은 윗사람에게 대답할 때, 방송 인터뷰에서, 또는 여러 사람들을 청자로 하는 대답에서 자주 보인다.
그러나 ‘완곡’의 쓰임이 지나치면 어색해진다. 말하는 사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나, 자신의 감정까지 완곡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4)가. 이번 여행은 신나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나. 산 정상에 서니 기분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다. 이 가게는 맛도 좋고 값도 싸서 자주 찾는 편인 것 같아요.
   라. 이 집 음식은 맛있는 것 같아요.

(4가~라)에서 문장의 주어는 모두 말하는 사람(1인칭)이다. 그리고 (4가)의 ‘즐겁다’와 (4나)의 ‘기분이 좋다’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나타낸다. 화자의 감정까지 ‘-것 같아요’로 표현한다고 상대방에게 부드럽고 겸손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감정을 숨긴다는 느낌을 준다. 책임회피성 표현이다. (4다)의 ‘자주 찾다’와 (4라)의 ‘맛있다’는 화자가 직접 겪은 경험을 표현한다. 그 경험은 ‘추측’의 대상이 되지 않을뿐더러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화자의 의견이나 주장도 아니다. 따라서 이 경우 역시 ‘-것 같아요’로 표현하면 어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