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의 위치

기이하지 않습니까. 머리의 위치 또한.

목을 구부려 인사를 합니다. 목을 한껏 젖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당신에게 인사를 한 후 곧장 밤하늘이나 천장을 향했다면, 그것은 목의 한 가지 동선을 보여줄 뿐, 그리고 또 한 번 내 마음이 내 마음을 구슬려 목의 자취를 뒤쫓았다는 뜻입니다. 부끄러워서 황급히 옷을 입듯이.

당신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면 목은 어느 방향을 피하여 또 한 번 멈춰야 할까요. 밤하늘은 난해하지 않습니까. 목의 형태 또한.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 대하여.

목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긴 식도를 갖고 싶다고 쓴 어떤 미식가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식도가 길면 긴 만큼 음식이 주는 황홀은 천천히 가라앉을까요, 천천히 떠나는 풍경은 고틍을 가늘게 늘리는 걸까요, 마침내 부러질 때까지 기쁨의 하얀 뼈를 조심조심 깎는 중일까요.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요.

소용없어요, 목의 길이를 조절해봤자. 외투 속으로 목을 없애봤자. 그래도 춥고, 그래도 커다란 덩치를 숨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목을 움직여서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떠나듯이.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또 한 번 찾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떤지를 가장 잘 알려주는 표지는 무엇일까요. 표정일 수도 태도일 수도 어조일 수도 있겠지만, 이 미묘한 작품에 의하면 존재와 존재의 관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목의 위치’입니다. 관계가 자연스럽지 않을 때 우리들 목은 뻣뻣해지거나 어색해지거나 애매해지겠지요.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목의 위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선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질 때 목의 위치는 달라집니다. 인사를 하려면 ‘목을 구부려’야 하니까요. 또한 ‘당신’과의 관계에 따라 시선이 향하는 곳도 제각각일 것이므로 목의 위치도 달라지겠지요.
거듭되는 반문의 시행을 통해 이 작품은 목의 위치나 머리의 위치는 ‘기이’하고, 목의 형태는 ‘난해’하며, 당신에 대한 나의 태도 또한 ‘애매’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일 때 어쩌면 목에서 ‘기침’이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목의 ‘길이’를 조절하고 싶어 외투 속으로 목을 없애보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그래도 춥고’, ‘커다란 덩치’를 숨기지 못합니다. 추위를 벗어날 수 없고 덩치를 숨길 수 없다는 데서, 관계의 어색한 정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관계가 어색할 때 그 정황을 재설정하기 위한 시도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도 목을 움직여서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라는 반문의 시행은, 이와 같은 재설정을 향한 시도를 말해줍니다. 이때 ‘목’은 신체의 다른 부위인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겠지요. 즉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떠나듯이. 다리를 움직여 당신을 또 한 번 찾았듯이”, ‘목’의 움직임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수한 ‘나’와 ‘당신’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 목의 위치는 어떠해야 할까요.
갑자기 목이 뻣뻣해집니다. 목의 적절한 위치는 방위인가요, 각도인가요, 아니면 높낮이인가요. 어느 하나나 둘이기도 하고 셋 모두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목의 위치가 적절하지 못할 때 관계 역시 삐그덕거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