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한 현대사회에 피를 통하게 하는 것
그렇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도 법치국가다. 오늘날에는 사람들 간의 갈등에서 ‘법대로 하자’ 혹은 ‘법정으로 가자’라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법은 결코 만능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윤리적 가치에 무미건조함을 안겨준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윤리적 가치가 메말라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방안이 아닌 만능으로 착각한 법에 의지해 해답을 찾고자 한다. 여기에 피를 통하게 하는 것이 방촌지지다. 방촌지지는 사람의 마음이다. 방촌지지는 『열자(列子)』의 ≪중니(仲尼)≫편에 처음 등장하며 『삼국지』 ≪촉서≫ 〈제갈량편〉에는 다음과 같이 수록돼 있다.
유비가 신야에 머물고 있을 때 서서는 제갈량과 더불어 군사이자 정치가로 활약했다. 그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삼고초려로 극진히 예우할 것을 권한 인물이다. 서기 208년 형주의 유표가 죽자 차남인 유종이 뒤를 이었으나, 당시 유종의 나이는 14세 밖에 되지 않아 조조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항복한다. 번성에 있던 유비는 이 말을 듣고 강릉으로 퇴각하나 추격해온 조조에게 패배하고 서서의 어머니는 조조에게 사로잡힌다. 이에 효성이 지극한 서서는 유비에게 “본래 장군과 더불어 왕패의 업을 도모하려한 것이 제 방촌지지였습니다. 이제 늙으신 어머니를 잃었기에 방촌이 혼란스러워 더 이상 장군을 섬기더라도 도움이 되지 못 할 테니 여기서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라며 하직인사를 올리고 조조의 진영으로 갔다.
옐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 말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지만 그 법은 도덕에 근본을 두고 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아서는 안된다”와 같은 누구나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이 ‘살인죄’, ‘절도죄’와 같은 이름으로 명명돼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법과 도덕의 전치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법은 도덕이 될 수 없고 도덕도 법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오늘날이지만, 법에 너무나도 의존한 나머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조성하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사람이 잘못을 하면 관용과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고 무조건적으로 법으로 처벌하려는 윤리소양의 부재가 사람의 도덕적 가치를 판단하는 뇌메커니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기계적으로 빚어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아날로그적 감성의 함양과 인본주의적 판단을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법은 결코 만능하지 않다. 그러한 법의 불안정함과 무미건조한 현대사회에 피를 통하게 하는 것이 바로 방촌지지. 즉, 인간의 마음이다.
유일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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