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될 수 있어
누군가는 기다렸을, 또는 누군가는 오지 않길 바랐을 수 있는 3월이 찾아왔고, 우리는 늘 그렇듯 개강을 맞이했다. 개강이 다가올 때마다 다짐을 세우는 대부분의 학우가 그렇듯, 나 역시 몇 가지 다짐을 세우고 새 학기를 맞이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새내기였을 때도 몇 가지 다짐을 세우고 개강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예비 새내기에게, 개강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곤 그 누가 알았을까? 코로나 세대의 시작, 다른 학번보다 조금은 특별한 새내기 편집장의 이야기.
말이 개강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거지. 개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2020학년도 1학기는 전공 수업을 포함해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됐고, 이는 내가 기대했던 대학 생활이 멀어졌음을 의미했다. 5월 중순에 열린 신입생 OT 때 교수님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20학번 학우들을 처음 봤고, 기말고사 때 두 번째로 봤다. 코로나로 인해 서로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못했으니 정확히는 마주쳤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첫 대학생활의 다짐이 무너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발견했던 것이 바로 ‘언론사’였다.
우연히 에브리타임에서 본 ‘수습기자 및 방송인력모집’ 공고는 무너졌던 다짐을 다시 세우는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군산대 언론사에 지원하여 ‘신문기자로서 글쓰기 능력을 향상하고, 방송제작인력으로서 촬영 및 편집을 배워보자.’라는 보기에는 단순한 다짐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에게는 당연하게도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언론사 수습기자로 들어오자마자 아나운서를 했던 것, 영상 촬영 및 편집, 신문 작성까지.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새내기이자 수습기자였던 나는 서툴렀고, 잦은 실수를 하곤 했다.
그리고 새내기의 끝, 마지막 달 12월에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편집장님의 권유로 신문팀에서 반 면짜리 기사를 맡게 된 것이다. 당시 반 면짜리 기사는 내게 큰 겁을 주었다. 당시 편집장님께서는 작은 보도만 지원했던 나의 모습을 보곤 글 쓰는 것에 자신 없어 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셨고, 한 수습기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반면의 기사를 선뜻 권유해주셨다. 나는 기사를 혼자 쓰는 과정과 편집장님과 함께 수정하는 과정에서 글의 맥락과 구성을, 발행된 신문에서는 글의 완성을 배웠다. 겁이 났다고 언급했을 뿐, 사실 이 과정과 결론은 언론사 내에서 내가 가장 해내고 싶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동기들은 지금의 나에 대해 ‘뭐든 똑 부러지게 하는 친구’라며 엄격하게 생각하고 무엇이든 잘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리 똑 부러진 사람이 아닌,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정정해준다. 나는 우리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고, 군산대 언론사에 지원했다. 학과에서는 과탑을 해보고 싶었고, 군산대 언론사에서는 글쓰기 능력 향상과 촬영 및 편집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는 하고 싶다는 다짐 하나로, 이루고 싶은 것을 실현해냈다.
과정과 결론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히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과정으로 결론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는 반면 짜리 기사를 발판으로, 한 면도 작성할 수 있는 기자가 되었고, 이제는 그 과정을 지나 편집장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생각보다 잘 안 되거나, 혹은 더디게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결말이 찾아오고 결실을 이루듯 우리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야심 찬 다짐을 세우는 학우들에게, 뭐든 될 수 있다는 응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