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네 글자, MBTI
최근 우리 주변에서 MBTI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줄임말인 MBTI는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고안한 성격 유형 검사 도구로,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성격 검사이다. 인간의 행동이 심리적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칼 융의 이론을 기반으로 한 이 검사는 개인의 선호를 파악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MBTI에 열광할까? MBTI는 각양각색의 성격을 유형별로 규정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해 대인관계를 맺는 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번 문화에서는 MBTI가 무엇이고, 우리 일상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MBTI의 유형>
▲ MBTI 16가지 유형 지표 / 출처: MBTI & Health 심리 카페 |
MBTI는 네 가지의 지표를 기준으로 선호경향을 분류하여, 개인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둘 중 하나의 지표에 속하게 된다. 먼저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외향형(E)과 내향형(I)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외향형(E)은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경험을 통한 이해를 선호한다. 내향형(I)은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며, 사전 정보를 이해한 후 경험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인식 방식에 따라 감각형(S)과 직관형(N)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감각형(S)은 경험을 중시하고 사실적 묘사에 능하며, 직관형(N)은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비유적 묘사에 능하다. 판단 근거에 따라서는 사고형(T)과 감정형(F)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고형(T)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고, 감정형(F)은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감정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생활 방식에 따라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구분할 수 있다. 판단형(J)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생활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인식형(P)은 융통성 있고 유연한 생활 방식을 선호한다. 이와 같은 4가지 기준을 조합해 총 16가지의 성격 유형이 만들어진다.
<MBTI의 성향 지표>
▲ MBTI 성향 지표 / 출처: MBTI & Health 심리 카페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진 MBTI는 1990년대 국내에 처음 도입돼 기업의 채용이나 진로 파악에 주로 활용됐다. 하지만 오늘날 MBTI는 단순히 진로 파악을 넘어서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6월 기준 MBTI 관련 검색 빈도가 1년간 20배 가까이 증가했음을 밝혔고, 이는 혈액형이나 별자리가 차지하던 성격 구분 지표의 자리를 MBTI가 대체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MBTI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집콕의 증가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간단하면서도 알찬 내용을 담은 각종 심리 검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MBTI는 개인의 정체성을 분석하기 위한 체계적인 지표를 갖추고 있으며,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결과를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비슷한 유형을 지닌 사람들끼리의 연대를 심어주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MBTI의 체계적이고도 간단명료한 지표는 자신을 파악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아가 오늘날 MBTI는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MBTI>
▲ MBTI 관련 영상 콘텐츠 / 출처: Youtube |
우리는 MBTI를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MBTI는 자기소개에도 언급되는 등 우리 세대의 명함처럼 사용되고 있다. 우리 일상 속 여러 매체에서도 ‘첫눈에 반했을 때 MBTI별 반응’, ‘MBTI별 카페 주문할 때’ 등 유형별 차이점을 분석한 다양한 관련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에 시청자들은 특정 유형의 행동에 공감하고, 자신과 잘 맞거나 잘 맞지 않는 유형을 파악하며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 또한,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MBTI를 공유하며 색다른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실존 인물뿐 아니라 디즈니 공주, 해리포터와 같은 영화·드라마나 웹툰 속 캐릭터들의 MBTI도 설정되고 있다. 일례로, 웹툰 등장인물의 MBTI를 소개하는 네이버 웹툰의 ‘2020 최애캐의 MBTI’는 평점 9.6점을 기록하며 MBTI의 인기를 입증했다. 이와 관련해 MBTI 결과를 바탕으로 선호할 만한 웹툰을 추천해주는 콘텐츠도 등장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꽃·캐릭터 등 다양한 성격 검사도 파생되고 있다.
<‘나’를 표현하는 MBTI 패션>
▲ 패션 성향 테스트 / 출처: 캐치패션 |
MBTI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MBTI 패션 또한 유행하고 있다. 프리미엄 쇼핑 플랫폼 캐치패션에서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패션 브랜드를 추천해주는 ‘패션 성향 테스트’를 도입해 SNS와 패션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받았다. 이외에도 다양한 플랫폼에서 유형별로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과 아이템을 소개하고 있다. NT(분석형)/SP(탐험가형) 유형은 깔끔하고 무난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반면, NF(외교형)/SJ(관리자형) 유형은 독특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식이다. MBTI 유형이 그려진 커스텀 티셔츠나 가방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커스텀 프린팅 기업 마플은 지난해 6월 MBTI 티셔츠를 자랑하는 전국 ‘MBTI 자랑대회’를 열었다. 다른 기업들도 티셔츠·에코백·파우치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MBTI를 접목하여 판매하고 있다.
<신세대를 사로잡는 MBTI 마케팅>
▲ MBTI 자랑대회 포스터 / 출처: 마플 |
이러한 흐름은 기업 마케팅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여러 기업은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경향이 강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새로운 마케팅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은 ‘배민주문유형검사(BMTI)’를 도입했다. MBTI를 차용해 소비자의 주문 유형을 파악하는 이 이벤트는 가장 많이 배달시킨 항목을 알파벳 이니셜로 나타내고, 재치 있는 설명을 덧붙였다. 쿠폰 제공 이벤트도 진행해 검사 결과를 SNS에 공유하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메신저 플랫폼 카카오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통해 ‘MBTI 기획전’을 운영하였다. MBTI 검사를 기반으로 성격과 취향에 따른 선물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 배민주문유형검사(BMTI) / 출처: 바이라인네트워크 |
▲ MBTI 기획전 / 출처: 카카오 |
이 마케팅은 평균 2배 이상의 클릭 수를 기록했고, 10~20대의 클릭률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이처럼 MBTI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제품에 친밀감을 느끼게 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취업시장과 MBTI>
▲ MBTI 자랑대회 포스터 / 출처 : 마플 |
취업시장에도 MBTI가 등장했다. 취업 준비 시, 나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야만 희망 직종에 필요한 인재임을 효과적으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구직자들은 MBTI를 통해 본인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이를 자기소개서 작성에 참고하기도 한다. 본래 MBTI가 진로 탐색에 활용되어온 만큼, 직업 선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역시 인재 채용에 MBTI를 활용하고 있다. MBTI 결과를 요구하는 채용공고도 등장했으며, 실제로 2020년도 하반기 LS전선 자기소개서에는 지원자의 MBTI를 묻는 문항이 실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일부 기업의 서류·면접 전형에서 MBTI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MBTI가 당락을 결정짓는 요소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지만, MBTI 열풍이 취업시장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MBTI를 둘러싼 오해와 비판>
하지만 MBTI는 다른 성격 검사보다 문항이 적고 검사 방식이 정밀하지 않아 신뢰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심리학계에서는 그다지 저명성 있는 검사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기 보고형 검사라는 특성상 응답자의 응답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불확실한 면이 있다. 스스로 바라보는 모습과 타인이 바라보는 모습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덟 개의 지표만으로 개인의 모든 측면을 예측·해석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타인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여 선입견을 심어줄 위험성도 존재하는데, 이는 개인을 그 자체가 아닌 MBTI 유형으로 바라볼 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격’이 시간이나 감정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즉, I 유형이 나왔다고 해서 E 유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는 자세를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MBTI에는 좋은 유형도, 나쁜 유형도 없다. 그저 특정한 유형을 지닌 개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오늘날 MBTI는 단순한 성격 검사를 넘어 우리 세대의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MBTI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때로는 경계하기도 한다. 현재의 열풍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MBTI 검사 결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상호다양성을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