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살아 숨 쉴 때까지
내가 글을 처음 쓰게 된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모 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나간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할래!”라며 선뜻 나서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적는지도 모른 채, 해당하는 주제로 글을 끄적인 나는 인생 첫 수상을 했다. 조금 더 자라서, 사람들 속 스스로를 인식할 즘에는 순수하게 ‘흥미’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글로 적어내고 만족하는 행위가 몇 번이고 반복됐다.
이런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왜 백일장 같은 곳에 나가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지만, 나는 이미 두어 차례 원고를 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아무 곳에서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단순히 재미로 쓰인 글에는 평가라는 무게를 이겨낼 만큼의 견고함이 없었다.
한동안은 마치 모종의 이유로 절필한 작가 흉내를 내며 지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건 2020년도 가을이었다. 비대면 수업으로 대학에 이렇다 할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나는, 고민 끝에 언론사에 발을 들였다. 매달 기사를 쓰고, 신문을 만들어 전하고, 글에 대한 생각의 폭을 확장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야 내 문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목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찬 머리를 쥐어뜯는 내게, 친구가 질문했다. “그럼 너는 나중에 글로 먹고살 거야?” 관객이 가득한 콘서트장처럼 시끄러웠던 머릿속에 정적이 맴돌았다.
『빅 매직』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내 글쓰기에게 내 삶의 재정적 책무를 맡기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이 문장처럼, 나는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글은 ‘흥미’에 불과했고, 단순한 흥미를 채찍질하며 내 글을 괴롭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내 글을 방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말 뒤에, 영원히 성장하지 말라는 억압도 함께 적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늘 목표 설정이 문제였다. 실력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형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큰 공모전을 도전하겠다는 건, 떨어지는 운석을 맨몸으로 막을 테니 믿어달라는 것과 같았다. 큰 목표를 한 번에 이루려는 허황은 그만두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이뤄나가야 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는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 내가 당장 해야 하는 일과 지향하는 가치, 그리고 하고 싶은 일.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실패를 잊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글이 하고 싶은 요소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은 내 삶에 실패로 남았고, 나는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 그 자리에 멈춰 외면하기만 했다.
나는 오늘날 내 글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실패로 남겨두지 않고, 다시 성공으로 기억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가장 최근의 목표는 ‘황룡 학술문학상’에 도전하는 것이다. 지난해 동안 언론사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학술문학상의 수상작들을 감상했다. 신문에 실린 문장들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키보드 위에서 자연스럽게 손끝을 움직였다. 친구의 말처럼 글로 먹고살 만큼은 아니어도, 나는 내 글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쉴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고 낡고 헤진 모습이 되어도, 그건 내가 만들어 낸 나의 흥미이기 때문이다.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내 글이 변화하는 과정을 다시 겪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