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전인권
최근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유해매체물 선정을 두고 보여주는 갈지자 행보가 우리들에게 웃음아닌 웃음을 던져주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간 여성들이 소외되어 온 것이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러한 갈등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여성가족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간에도 그리 곱지 않아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층위에서 말해본다면 그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미 잘못된 오해의 틀 안에서 길러진 남성적 시선이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파악하는 여성에 대한 시선도 이미 그 출발지점에서부터 무엇인가가 어긋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남자의 탄생」은 먼저 이와 같은 시선의 교정을 유도한다. 그렇다고 입에 발린 남녀 평등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등이든 불평등이든 남자란, 또는 여자란 어떠하다는 식의 상식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고 지켜져 온 일종의 지배담론으로 먼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가 말한 유명한 구절인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남성 내지 남성성은 사회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 사회에서의 경험은 가부장적 질서와 제도가 속속들이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반증한다. 어머니가 아들들에게 쏟는 지극한 정성과 사랑 역시 사실은 아들이라는 존재를 통해 가부장제도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만들고자 하는 생존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가부장제도라는 사회구조는 우리 모두를 그 틀에 종속시켜 남자 또는 여자, 남편 또는 아내, 그리고 아들 또는 딸이라는 각각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원천이 된다.
따라서 현실은 더 이상 남자다운 남자, 여자다운 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그것을 벗어난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 시대이다. 그럴때만이 가부장제도라는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나아가 타인과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엄친아’와 ‘엄친딸’들에게 괜한 주눅 들 필요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