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서 거절하라!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로부터 부탁받기 마련이다. 남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직장 상사로부터, 때로는 사회로부터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가 부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구속되고 만다. 또 이러한 경우는 내가 정황을 파악하여 선택하기보다 어쩔 수 없어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대다수다.
다른 나라보다 유독 이러한 성향이 한국 사회에서 강한 이유는 체면과 정, 눈치 등의 요소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한국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무언가 변명할 때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며 동시에 내가 적법행위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쇠사슬과도 같다.
상부의 체면 때문이라도 어떠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고 억지로 떠맡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남의 눈치를 피하지 못해 일을 부탁받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동기, 후배와의 정 때문이라도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 또한 있다. 이러한 상황은 상당히 거절하기 힘들다. 거절하는 순간은 나 자신이 편해질 수 있지만, 후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후회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를 잃게 되는 경우를 동반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절하기를 두려워한다.
모든 부탁을 거절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거절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거절의 경우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지혜경영연구소 손기원 대표는 “개인, 직장, 사회와 나 자신의 명확한 가치 기준을 설정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우선 상대의 처지를 생각해 보자. 어떠한 목적인지, 어떠한 상황인지. 그 이후에 내 상황, 여유 등을 생각해 보자. 이 부탁을 들어줬을 때 어떠한 여파를 맞게 되는지를 말이다. 때로는 나 혼자 결정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후 그 외의 요인들을 고려하자. 친분의 정도, 직장에서의 관계 등을 말이다.
때로는 적절한 핑계를 해야 할 때도 있고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하고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지만, 결국 선택의 순간은 오는 법이다. 만일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주기 어려우면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해내지 못하고 결국 후회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받아들이기보다, 그리고 그 부탁을 받아들이더라도 내가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몇 배는 낫다. 우리의 선택은 그 누군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닌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