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가?
지난 한 주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뉴스는 단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지난달 28일 국가정보원은 이석기 의원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제기하며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33년 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이후 처음 등장한 이 낯선 단어에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국회는 재빨리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가결(5일)했고, 국정원은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지 5시간 만에 이 의원을 강제 구인하여 구속했다. 다음날 새누리당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제출했고, 국정원은 “여적죄”를 추가 적용했다.
6일자 조선일보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제기했다. 채 총장은 검찰총장에 취임할 때부터 여권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당에게는 “통제가 잘 안 되는” 존재였다고 한다. 10년 이상 유지되었다는 혼외관계가 왜 지금 새삼스레 보도되었는지 의아하지만, “인륜”을 거스르는 혼외관계 이슈는 대응을 하면 할수록, 그렇다고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점점 더 채동욱 총장의 발목을 잡는 올가미가 될 것이다. 일간지들은 그 사실 관계를 확인하느라 한동안 분주할 것이다.
국정원과 보수언론이 연일 터뜨리는 충격적인 뉴스에,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보도와 국민적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다.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밝히는 것과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막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리사회의 기득권자들은 위기 때마다 종북과 인륜을 들고 나와 일사불란하게 국민의 입과 귀를 막는다.
이 와중에 또 다른 종류의 뉴스가 뒷목을 친다. 지난 6일 메가박스는 개봉 이틀 만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중단했다. 일부 보수단체의 항의와 시위 위협에 관객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20여개의 보수단체를 조사해본 결과 실제로 항의와 시위 위협을 가했던 단체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하는 시간강사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학생에 의해 국정원에 신고 당했다. 이 학생은 강사가 민주노동당의 간부로 일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고 한다.
국민의 입과 귀를 막는 것은 과연 기득권자들뿐일까. 정부의 공식발표와 다른 견해를 담고 있는 영화는 구체적인 권력의 외압이 없어도 극장 측의 ‘자발적인’ 결정에 의해 상영이 중단된다. 제법 입소문을 타고 관객을 늘리던 영화였음에도 그리된 것을 보면 이윤 추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모양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외압이 없어도 학생들의 ‘자발적인’ 검열을 통해 국가기관에 신고 된다. 대학에서는 무엇이든 가르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외부의 물리적 힘에 의해 생각과 행동을 통제 당하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 사람들은 ‘자발적’인 내부 검열에 의해 스스로를 통제한다. 검열의 기준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통제하지 않았을 때 당할지 모를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만 똬리를 틀고 있다. 아니, 구체적인 불이익이 없어도, 힘을 가진 ‘그들’과 멀어지는 것 자체가 두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힘 있는 사람들은 내부 검열의 기준을 스스로 비판하지 않는 국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언제든지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쥐락펴락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사회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