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공화국과 대학의 미래
가히 ‘표절’ 공화국이라고 할만하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최고공직자와 국회의원, 교수와 연구원, 중하위 공직자, 심지어 연예인까지 각계각층 사람들이 논문 표절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논란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아도 명백히 표절이라 판단할 수 있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아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었음에도 정작 본인은 표절하지 않았다든지 단순한 실수였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과연 표절의 개념, 표절의 도덕적 ․ 법적 문제 등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표절 사실이 밝혀지자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한 후 학위 반납까지 선언한 한 여배우의 어쩌면 ‘당연한’ 대응이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우리 사회에 표절이 만연하게 된 것은 대학과 학문의 본질에 대한 인식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유일한 존립 근거는 ‘새로운 진리’의 탐구이다. 이미 발견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거나 이를 현실에 적용시켜 ‘새로운’ 기술을 창안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정신적, 물질적 진보를 실현시켜 나갈 책무가 대학에 있는 것이다. ‘새로움’을 담지 못한 논문은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도, 방대한 자료를 동원했어도 논문으로 인정될 수 없다. 이런 엄밀한 학문 세계에서, 인용 표시도 없이 타인의 연구 업적을 훔쳐서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옮겨 놓는 표절 행위는 결코 추호도 용납되어서 안 된다. 그것은 대학과 학문,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좀먹는 범법 행위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대학(원)의 학위 수여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순수하게 학문적 성취를 기준으로 학위를 수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우리 대학들은 각종 학위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편승하여 대학의 양적 팽창만을 추구하다 보니 정작 학문의 질 관리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굳이 학위가 필요 없는 분야에서조차 학위 취득이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논문 작성을 둘러싼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대학이 진리의 탐구와 수호라는 본연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는 대학의 존립 근거는 물론 대학의 미래를 대학 스스로 부정하는 자해 행위에 해당됨을 명심해야 한다.
표절 행위를 근절하려면 표절이 학문의 도덕성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민 ․ 형사상의 책임이 뒤따르는 범법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각 대학과 학회에서 마련한 연구윤리 기준을 강화하고, 표절이라고 판단한 논문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표절 당사자 역시 어처구니없는 변명 대신 자신에게 부과될 학문적, 도덕적, 법적 책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대학은 졸업생의 학위논문은 물론 대학구성원의 연구 전반을 엄밀하게 관리하여 표절행위가 더 이상 대학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학부생의 보고서나 시험답안지 작성 단계부터 ‘표절’ 행위 없이 글 쓰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대학의 글쓰기 교육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도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 한번 표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것이 왜 범법 행위인지에 대한 의식 없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이제 더 이상 표절 논란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글쓰기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표절 행위의 근절을 위해 함께 실천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우리 대학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