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세대’ 우리는 또 다른 1970년을 겪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강제로 쓰게 된 시가 학교 백일장에서 입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시가 우연히 당선되었고 그 시를 읽어본 담임선생님께서 시인이 되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분명 시인이 되는 게 어떠냐고 하셨고, 내가 쓴 것은 시였는데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로 교과서를 읽는 시간보다 소설책을 읽게 되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작가가 된다는 것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가슴 먹먹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내 실력이 보잘 것 없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현실이 내 주변을 얼마나 답답하게 만들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글 쓰는 일에 두려움이 앞서고 즐거움이 조심스레 뒤따라온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외딴 방’ 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1970년대를 형상화한 자전적 소설 ‘외딴 방’ 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형상화한 듯하다. 장난스럽게 말하면 평행이론에 무섭도록 일치한다. 1970년대 주인공의 모습은 지금의 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 꿈은 소설가였다. 지금도 하고 싶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포기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현실적 조건 때문이었다. 일단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불안하다. 언제 등단이 될지도, 얼마를 벌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만 내가 너희들하고 다른 것 같아. 나는 너희들이 싫어.다른 아이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서 1970년의 미서가 헤겔을 읽었다면 2011년의 미서는 현금서비스를 받아 명품백을 들고 다닐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할 것이다.
‘나는 성공한 여자로 보일 거야.’
1970년에는 공부를 위해서 공장으로 들어갔다면 지금은 공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얼마나 많은 부를 누리느냐가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명품백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최고급 외제차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성공한 것이다. 이런 청춘 속에는 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 공무원 경쟁률이 93:1을 넘었다고 한다. 안정적이고 수입이 괜찮은 편에 속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1위가 삼성기업인 걸로 나타났다. 이유를 보면 높은 연봉, 높은 수준의 복지 등이 있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서’, ‘적성에 맞아서’ 라는 이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 안정적이고 높은 직장을 다니는 것이, 그런 곳으로 입사를 하는 것이 청춘의 과제이다. 1970년 주인공의 청춘에서는 공부를 하는 것, 외사촌처럼 사진을 찍는 것이 꿈이 아니다. 2011년의 청춘에게 꿈은 없다. 그러나 두 시대의 청춘들이 외딴 방을 찾고 있다는 것은 같은 것 같다. 서른 일곱 개의 외딴 방의 바깥은 늘 북적거렸지만 그 방을 생각하면 한 없이 외졌다는 생각, 외로운 곳의 우리들, 거기에 외따로이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그 외딴 방. 현재도 그 외딴 방은 존재한다. 젊은 청춘들은 93:1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서 혹은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 남에게 자랑할 만한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 외딴 방으로 젊은 청춘을 걸고서 숨어 들어간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 청춘의 꿈이란 그런 것이다. 1970년대와는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아니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이란 단어가 우리 청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가 꾸는 것은 목표이다. 우리는 목표를 꿈꾸는 청춘이다. 번듯한 집을 두고서 사법고시, 행정고시, 공무원 시험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버리고 고시원이라는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외딴 방이다. 모두가 외따로이 떨어져서 서로의 목표를 꿈꾸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서로의 존재는 없다. 1970년대를 지내는 이들의 대부분이 정치보다 현실에 대해서 더욱 치열했듯이 이 젊은 청춘들 또한 정치에 대해 귀와 입을 닫은 채 살아간다. 그 끝에는 자신의 성공이라는 목표가 있다. 1970년대에도 청춘들이 외딴 방에서 생활하고, 2011년의 청춘들도 외딴 방에서 지낸다. 많은 것들이 다르다고는 해도.
 희재와 주인공의 그럼게임은 그 자체가 우울한 시대상을 반영한다. 많은 것이 풍족하고, 행복하다면 그럼게임은 존재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럼’ 이라고 흔쾌히 대답해줄 수 있는 이가 없기에,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도 ‘그럼’ 이라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에 가능한 가능한 놀이였다. 결국 그럼게임은 우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놀이였다. 지금의 20대를 지칭해서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라고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로 ‘삼포세대’ 라고 지칭한다. 이 우울한 자화상. 우리 젊은 청춘들도 그럼게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삼포세대’ 모두가 모여서 말이다. 지금의 청춘, ‘삼포세대’ 를 모아서 그럼게임을 해보아야겠다.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 연애 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가 하고 싶은 일, 꿈을 가져도 될까?’
‘그럼.’
질문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어색한데 거기에다 씁쓸하게 ‘그럼’ 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아니’ 라고 말한다면 이건 놀이가 아니다. 현실이 된다. 재미가 없어지고 즐거움이 사라진다. 그럼게임을 통해서 현실을 도피해 나간다. 지금도 그랬고 1970년에도 그랬듯이.
 외딴 방을 읽으면서 자전적 소설이라는 생각보다, 197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에 아파하기보다도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더 돌아보게 만들었다. 매스게임과도 같은 공부를 하고, 직장을 꿈꾸는 시대. 그리고 마주하게 된 현실 속에서 포기하게 된 진실하고 애절한 꿈, 목표를 꿈으로 착각하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꿈은 포기하고 어떤 회사가 월급을 많이 주는 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삼포세대’ 가 아니라 ‘사포세대’ 일지도 모른다. 연애, 결혼, 취업, 꿈 이 네 가지를 포기한 세대. 그러나 이 긴 암흑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줄 반딧불은 꿈일 것이다. 포기하지 말자, 우리는 젊으니까.
 

  • 소감문-최봉권(국어국문·4)
    글을 쓰는 재미로 살아가는 평범한 학생으로 학교에서 주최하는 황룡문학상에 꼭 당선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습니다. 2학년과 3학년에도 냈었지만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4학년이 되어서 제출했던 글이 당선되어 아쉬움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받은 이 상은 제 인생에서 큰 의미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마치 졸업 전 누군가가 저에게 주는 큰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졸업 후에 누군가에게 ‘나 이런 상 받았어’ 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졸업을 앞두고서 고민이 많아지고 있을 때 황룡필독도서를 통해서 읽게 된 것이 신경숙 작가의『외딴 방』이었습니다. 1970년대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이 책을 보면서 복잡해지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공무원, 대기업 준비, 준비. 준비란 말만을 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꿈도 포기해야 할 하나가 됐습니다. 저 또한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언젠가는 제 꿈을 찾아서 갈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아마 이 상이 그 꿈을 찾기 위한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그 꿈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풀 죽어 있던 때에 받은 상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너무 많은 의미를 가진 상을 받게 됐습니다. 부족한 능력으로 쓴 글을 좋게 봐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에는 소설 부분에서 받고 싶지만 졸업을 미룰 수는 없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쉬움은 또 하나의 추억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